미국에서 상장기업들이 암호화폐를 중심 자산으로 편성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가운데, 금과 같은 전통 자산은 규제 장벽에 묶이며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비트코인(BTC), 이더리움(ETH), XRP, 톤(TON) 등 주요 디지털 자산은 지금 이 순간에도 기업 재무 전략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자산 중심의 상장사들이 월가의 뷰를 재편하고 있다.
대표 사례는 전통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사실상 비트코인 보유 기업으로 변모한 전략지(Strategy, 구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급진적인 전환이다. 이 회사는 영업수익보다 암호화폐 보유량을 중시하는 구조로 탈바꿈하며, 새로운 자본 조달 모델을 열어젖혔다. 이후 다른 상장사들도 유사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예컨대 샤플링크 게이밍은 이더리움을 자산으로 편입한 첫 미국 증권거래소 상장 기업에 올랐고, 최근에는 비트마인(BitMine)이 약 1억 1,573만 원 상당의 이더리움(833,000 ETH)을 35일간 사들이며 샤플링크를 제쳤다.
반면, 금은 이러한 모델에서 배제되고 있다. 그 이유는 1940년 제정된 ‘투자회사법(Investment Company Act)’ 규정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기업이 별도의 영업 없이 금 같은 전통 자산을 보유하면 펀드와 동일한 규제를 받아야 하고, 이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기피하는 상황이다. 금 ETF가 활성화된 지금, 누구도 순수 금 보유법인을 별도로 만들려 하지 않는 것은 이러한 규제 리스크와 서사적 매력 부족 때문이다.
부동산도 예외는 아니다. REITs(부동산투자신탁)가 분배 요건과 수익 테스트 등 엄격한 제약을 받는 탓에, '보유→수익'으로 이어지는 단순 구조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다르다. 규제의 모호함, 매혹적인 투기성, 스테이킹을 통한 이자 수익, 에어드랍 가능성까지, 전통 자산이 제공하지 못하는 장점을 복합적으로 지닌다. 또한 이더리움이나 톤과 같은 코인은 기업이 생태계 활동에 직접 참여하거나 커뮤니티와 서사를 공유할 수 있는 통로로 기능한다.
GAAP 회계 기준에 따르면, 암호화폐는 ‘무형자산’으로 분류되며 단일 수익원이 아니더라도 기업은 이를 전략적 준비금으로 보유할 수 있다. 이는 규제를 받지 않고 ETF 같은 기능을 하는 셈이며, 기업가치는 사업성과보다는 암호화폐 자산의 등락에 따라 결정되는 형태로 수렴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마치 밈 주식처럼 참여 가능한 구조지만, 실질적으로 암호화폐 보유량이 뒷받침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이런 흐름은 현재의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는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암호화폐 친화적인 분위기에서 규제 강화 가능성은 낮아 보이며, 제도와 서사의 경계에서 토큰 기반 기업 모델이 구조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금과 부동산이 기업 재무의 주연이 되기 어려운 이 시대에, 암호화폐는 자산·서사·수익 모두를 아우르는 ‘완전 패키지’가 되고 있다. 규제의 여백이 허용되는 한, 새로운 디지털 자산 법인은 계속해서 시장을 파고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