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미국 블록체인 기업 서클과 손잡고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국내 주요 은행 중 처음으로 글로벌 디지털 자산 영역 진출에 나섰다.
11일 하나은행은 지난 5월 서클과 스테이블코인 분야 전반에 관한 포괄적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협력은 대면이 아닌 비대면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초기 단계다. 은행 측은 "세부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지만, 협력 범위를 넓혀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클은 미국 보스턴에 본사를 둔 블록체인 전문 기업으로, 달러화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 '유에스디코인(USDC)'을 발행하고 있다. 이 USDC는 글로벌 시장에서 테더(USDT)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스테이블코인으로, 거래 안정성과 투명성을 갖춘 대표적인 디지털 화폐로 평가받는다. 스테이블코인은 실물 자산(예: 달러)에 가치를 연동해 가격 변동을 최소화한 암호화폐를 말한다.
하나은행은 이미 올해 6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잠재력을 의식해 선제적인 상표 등록 작업에 착수한 바 있다. ‘HanaKRW’, ‘KRWHana’ 등 총 16개의 관련 상표를 특허청에 출원하며, 추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존 금융권에서는 보기 드문 선행 조치로, 디지털 자산 환경 변화에 대한 민첩한 대응력을 보여준다.
국내 은행들이 암호화폐 시장에는 소극적 대응을 보이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기술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판단하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결제·송금 사례가 늘어나면서, 국제 금융 인프라 경쟁에도 대비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한국 은행권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하나은행의 이번 행보는 단기적으로는 기술 협력 수준에 그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디지털 화폐 기반의 금융 서비스 확장과 글로벌 자산 운용 생태계로의 진입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금융 당국이 향후 어떤 규제 방향을 설정하느냐에 따라, 국내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현실화 속도도 달라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