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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사기, 지갑 해킹보다 승인 절차 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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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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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M 랩스는 암호화폐 범죄의 AI 도입 수준이 2024년 28점에서 2026년 54점으로 올랐다고 밝혔다. 사기 수법은 지갑 코드를 깨기보다 이용자의 승인·서명·복구 절차를 속이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가짜 지원 페이지와 지갑 승인 화면 / TokenPost.ai

가짜 지원 페이지와 지갑 승인 화면 / TokenPost.ai

AI를 활용한 암호화폐 사기가 지갑 코드를 직접 깨는 방식보다 이용자의 승인과 서명을 받아내는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공격 지점은 블록체인 자체보다 신원 확인, 지갑 승인, 복구 요청, 결제 지시 단계로 넓어졌다.

TRM 랩스(TRM Labs)는 17일 공개한 ‘2026 AI 범죄 도입 지수’에서 암호화폐 범죄 전반의 AI 도입 수준을 100점 만점에 54점으로 제시했다. 2024년 28점에서 오른 수치다.

보고서에서 스캠은 유일하게 ‘성숙’ 단계로 분류됐다. 해킹과 랜섬웨어는 ‘초기 확산’ 단계에 머물렀다. AI가 범죄 전 영역에 같은 속도로 퍼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속여 행동하게 만드는 사기 영역에서 먼저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핵심 변화는 ‘해킹’보다 ‘허락’이다. 사용자가 가짜 지원 창구, 딥페이크 영상, 음성 복제, AI 챗봇에 속아 지갑 접근 권한을 승인하면 거래는 정상 서명으로 처리된다. 스마트컨트랙트가 정상 작동하고 하드웨어 월릿이 올바른 키로 서명해도, 승인한 사람이 속았다면 자금은 이동할 수 있다.

TRM 랩스는 사기 보고에서 AI가 실제 공격에 쓰인 비중이 2022년 이후 약 13배 늘었다고 밝혔다. 2026년 현재까지 보고된 딥페이크 사기 손실은 2025년 전체보다 263% 많았다. 다만 이 수치는 보고 기반 지표로, AI 사기 전체 손실액을 뜻하지 않는다.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는 2026년 암호화폐 범죄 보고서 스캠 장에서 2025년 암호화폐 사기 피해를 170억 달러(약 23조5280억원) 이상으로 추정했다. 같은 보고서에서 사칭 사기는 전년 대비 1400% 늘었고, AI 연계 흔적이 있는 사기 조직은 전통적 사기보다 평균 수익성이 4.5배 높았다고 분석했다.

수치의 분모는 서로 다르다. TRM 랩스의 13배와 263%는 보고된 사기 사례와 딥페이크 손실 흐름을 본 것이고, 체이널리시스의 1400%와 4.5배는 온체인으로 식별된 사기 범주의 증가와 수익성 비교다. 이를 하나의 AI 사기 총액처럼 합산해서 볼 수는 없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통계도 같은 방향을 보인다. FBI는 2025년 인터넷범죄보고서 관련 발표에서 AI 관련 신고 2만2364건, 피해액 약 8억9300만 달러(약 1조2360억원)를 집계했다. 암호화폐 관련 신고는 18만1565건, 손실은 110억 달러(약 15조2240억원)를 넘었다.

금융범죄단속네트워크(FinCEN)는 2024년 11월 13일 경고문에서 생성형 AI로 만든 딥페이크와 허위 신분 문서가 신원 확인과 인증 절차를 우회하는 데 쓰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암호화폐 지갑만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기관 전반의 본인 확인 체계와도 연결된다.

코인베이스($COIN)는 4월 9일 블로그에서 승인 피싱이 이용자를 속여 지갑 접근 권한을 넘기게 만드는 사기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국제 수사기관과 공조해 피해자 2만명을 식별하고 도난 자금 1200만 달러(약 166억원) 이상을 동결했다고 밝혔다.

지갑 승인 요청은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이나 스마트계약이 이용자의 토큰을 다룰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절차다. 정상 서비스에서도 필요한 기능이지만, 공격자가 가짜 사이트나 알림으로 지갑 연결과 승인 서명을 유도할 수 있다는 점도 이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 경우 핵심은 지갑 자체의 기술 결함이 아니라, 이용자가 직접 권한을 승인하도록 유도되는 구조다. 보안 점검이나 지원 절차처럼 보이는 화면에서도 서명 요청과 권한 부여 범위를 따로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자기보관의 기준이 개인키에서 복구 정보 관리로 넓어지고 있다는 본지의 앞선 논의도 같은 맥락이다. 개인키 보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복구 절차, 승인 권한, 새 출금 주소 등록, 다중 확인 채널까지 관리 대상이 됐다.

국내 이용자에게도 시사점은 분명하다. 거래소 계정과 개인 지갑을 함께 쓰는 환경에서는 지갑 서명, 복구 문구 입력, 출금 주소 변경, 원격 지원 요청이 모두 위험 구간이 될 수 있다. 통상 이런 절차는 별도 기기나 별도 채널로 재확인해야 피해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AI 사기는 기존 사기를 완전히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더 빠르고 그럴듯하게 만든다. 지갑 보안의 초점도 코드 취약점에서 이용자의 의사결정이 조작되는 순간으로 이동하고 있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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