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중동 전쟁을 계기로 원유와 나프타 수입 구조를 손질해 비중동산 도입과 수송 경로 다변화를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특정 지역과 해상 통로에 지나치게 의존한 에너지 조달 체계가 이번 사태에서 취약점을 드러낸 만큼, 가격과 효율만 따지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안정성과 분산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모습이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2026년 4월 19일 공개된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전쟁이 끝나더라도 비중동산 원유 도입 확대와 수송 루트 다변화 정책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2025년 기준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도입 의존도가 원유 61%, 나프타 54%에 이른다.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산 원유가 세계 시장으로 빠져나오는 핵심 길목인데, 이 통로가 흔들리면 국내 정유·석유화학 산업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 장관은 과거에는 필요한 물량을 제때 들여오는 저스트 인 타임 방식이 효율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공급처를 나누고 재고를 더 확보하는 저스트 인 케이스 방식이 더 중요한 시대라고 설명했다.
비중동산 원유 확보의 유력한 대안으로는 미국이 거론된다. 미국산 경질유는 국내 정유사들이 중동산 중질유와 섞어 쓰기 비교적 편한 유종으로 평가된다. 정부가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를 검토하는 배경에는 공급망 안정뿐 아니라 통상 전략도 깔려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 삼는 상황에서 미국산 에너지 수입을 늘리면 무역 불균형 완화에 일부 도움이 될 수 있고, 향후 협상에서도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계산이다. 다만 정부는 이를 특정 대미 투자 사업과 직접 연결하기보다, 장기적인 공급망 분산 차원의 선택지로 보고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른바 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 수급과 관련해서는 실제 물량 부족보다 시장의 불안 심리가 더 큰 변수라고 보고 있다. 나프타는 석유화학 제품의 기초 원료여서 공급이 조금만 흔들려도 플라스틱, 섬유, 고무 등 여러 산업으로 영향이 번진다. 김 장관은 기업들이 평소보다 재고를 과하게 쌓으면서 공급망 상단의 작은 불안이 아래 단계로 갈수록 증폭되는 파급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관계부처와 함께 품목별 실시간 점검 체계를 가동하고, 급하게 물량이 필요한 현장이 확인되면 공급업체를 곧바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는 4월만 큰 차질 없이 넘기면 시장 전반에 안정 인식이 퍼질 가능성이 크고, 전쟁 상황까지 진정되면 공급망 불안도 점차 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위기 대응에서 정부가 특히 강조하는 대목은 정부와 기업 사이의 신뢰다. 정부는 정유사 공급가에 상한을 두는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발생한 기업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4조2천억원의 재정을 투입하기로 했는데, 이는 위기 때 정부 정책에 협조한 기업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떠안아서는 앞으로도 협력이 어렵다는 판단이 반영된 조치다. 김 장관은 이런 가격 개입이 시장경제 원칙에 늘 부합하는 것은 아니며, 어디까지나 전쟁이라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쓰는 한시적 수단이라고 선을 그었다. 동시에 취약계층이 고유가 충격으로 무너진 뒤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면, 지금의 보전 조치가 오히려 더 경제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부는 3천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이행을 맡을 한미전략투자공사를 6월 출범시킬 계획이며, 이를 통해 한미 협력의 실행력을 보여주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단순한 조달 문제가 아니라 통상, 산업, 안보를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더 굳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