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개발은행(ADB)이 중동 전쟁 장기화가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을 끌어내릴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한국의 연간 성장 전망치가 기존 예상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앨버트 박 ADB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경제연구·개발영향국장은 4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ADB 연차총회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구조여서 국제유가 상승의 충격을 크게 받는다고 설명했다. 유가가 오르면 에너지 수입 부담이 커지고, 이는 국내 물가를 밀어 올리는 압력으로 이어진다.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높게 유지하거나 추가로 올리면 소비와 투자도 둔화할 수 있어, 결국 성장세가 약해지는 경로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ADB는 최근 기준 시나리오에서 올해 평균 유가를 배럴당 96달러, 내년은 80달러로 제시했다. 이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올해 0.9%포인트, 내년에는 0.5%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는 반도체 수출 개선 같은 긍정적 변수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수치로, 최종 전망치 자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ADB는 지난달 제시한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 1.9%가 7월 수정 전망에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변수는 반도체다. 최근 한국 경제는 인공지능(AI) 확산에 힘입은 고성능 반도체 수요 증가 덕분에 수출 버팀목을 확보하고 있다. ADB도 반도체 호조가 중동 전쟁의 충격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반도체 산업 역시 완전히 안전지대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일부 자재를 중동에서 들여오는 만큼, 분쟁이 길어지면 원재료 가격이 오르거나 조달이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다시 말해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핵심 수출 품목이 동시에 외부 충격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ADB는 현재 상황을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으로 단정하지는 않았다. 박 국장은 한국이 반도체 경기 상승 국면이라는 뚜렷한 호재를 갖고 있고, 물가 상승의 원인도 중동 전쟁과 유가 급등이라는 비교적 분명한 외부 변수에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번 반도체 사이클은 과거처럼 일시적 재고 조정보다 AI가 수요를 이끄는 구조적 변화에 가깝기 때문에, 상승 흐름이 더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결국 앞으로의 관건은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 그리고 반도체 수출의 지속력이다. 유가 상승이 길어질수록 한국 경제는 물가와 성장의 이중 부담을 안게 되지만, 반도체 호조가 이어지면 충격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여지도 있다. 이 같은 흐름은 ADB가 7월 내놓을 수정 경제전망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반영될 가능성이 크며, 한국 경제의 하반기 방향도 그 결과에 따라 다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