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물가를 다시 자극하는 가운데, 고용시장에서는 채용도 해고도 크게 늘지 않는 이른바 ‘저채용·저해고’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성장 자체는 완만하게 이어지고 있지만, 기업과 소비자 모두 비용 부담과 불확실성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짙어졌다는 뜻이다.
연준이 3일(현지시간) 공개한 6월 경기동향 보고서, 이른바 베이지북에 따르면 미국 12개 지역 가운데 10곳에서 경제 활동이 완만하게 늘었다. 다만 이번 확장 국면은 체감 경기가 강한 상황과는 거리가 있다. 기업들은 비용 상승 속에서도 영업은 이어가고 있지만, 소비 심리가 약해질 조짐을 걱정하고 있다. 연준도 향후 6개월 경기 전망에 대해 기업들이 “거의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고 전했는데, 이는 경기 둔화 우려와 물가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베이지북은 각 지역 연방준비은행이 기업, 금융기관, 전문가 의견을 모아 만드는 현장 경기 보고서로, 통상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약 2주 전에 나온다.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에너지 가격의 파급 효과다. 연준은 중동 분쟁과 연결된 에너지 비용 상승이 물가 압력의 주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휘발유 가격에 그치지 않고 해운, 포장, 식료품, 비료처럼 운송과 생산 전반에 비용을 밀어 올리는 구조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에너지는 거의 모든 산업의 기초 투입요소이기 때문에 국제 유가나 연료비가 오르면 물류비와 원재료비가 연쇄적으로 상승한다. 여러 지역에서 소비자들이 연료 가격 상승을 불안하게 바라본다는 보고가 나온 것도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다.
고용시장은 겉으로는 안정적이지만, 속내는 조심스럽다. 대부분 지역에서 기업들은 적극적인 인력 확대보다 꼭 필요한 자리만 채우는 방식을 택했다. 신규 채용은 필수 직무나 퇴직자 발생에 따른 대체 충원에 집중됐고, 대규모 감원도 많지 않았다. 경기 방향을 확신하기 어려울 때 기업이 흔히 보이는 방어적 인사 전략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예외도 있었다. 방위산업과 데이터센터 수요가 늘면서 제조업 분야에서는 비교적 채용이 두드러졌다. 지정학적 긴장과 인공지능 확산에 따른 인프라 투자 수요가 일부 업종에서는 일자리를 떠받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물가 부담은 통화정책 판단에도 직접 연결된다. 연준이 선호하는 물가 지표인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4월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3.8% 올라 2023년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오는 16∼17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기준금리가 동결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번 베이지북은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 체제에서 나온 첫 보고서이자, 그가 처음 주재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공개된 자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에너지발 물가 압력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고용시장도 급격히 식지 않는다면, 연준은 당분간 금리 인하보다 물가 안정 확인에 더 무게를 둘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미국 경제가 ‘완만한 성장과 끈질긴 물가’ 사이에서 한동안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갈 가능성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