핌코는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남아 있어도 대형 기술기업들의 인공지능 투자 확대 흐름은 당분간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자금 조달의 기준이 되는 금리가 이미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는 데다, 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은 통상 단기 정책금리보다 장기 시장금리를 바탕으로 투자 계획을 세우기 때문이다.
로트피 카루이 핌코 매니징 디렉터는 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2026 미디어 라운드테이블'에서 연방준비제도의 정책금리가 인공지능 설비투자의 직접적인 걸림돌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른바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클라우드·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초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이미 10년물 미국 국채 금리 4.5%를 웃도는 환경을 감안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며, 우량 기업들은 이 정도 금리 변화만으로 투자 판단을 바꾸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시장이 예상하는 추가 금리 인상이 현실화하더라도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자체를 꺾을 정도는 아니라는 뜻이다.
오히려 핌코는 투자 확대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채권시장보다 주식시장에 있을 수 있다고 봤다. 기업이 공격적으로 설비투자를 늘릴 경우, 주주들이 투자 대비 수익성과 자본 효율성을 문제 삼아 경영진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카루이 디렉터는 현재 인공지능 투자 사이클의 규모가 1990년대 후반 이동통신·광통신 투자 붐에 견줄 정도로 커졌다고 평가했다. 미국 국내총생산 대비 설비·소프트웨어 투자 비중도 당시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설비투자 규모는 앞으로 18개월 동안 1조5천억달러, 5년 기준으로는 최소 5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처럼 막대한 투자 자금은 결국 차입에 더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내놨다. 핌코는 2026년부터 2027년까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설비투자가 영업현금흐름의 약 94%를 흡수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 대부분이 투자에 들어가면 내부 자금만으로는 감당이 어려워지고, 회사채 발행이나 대출 같은 외부 조달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다만 주요 기업들이 2024년까지는 부채보다 현금 보유액이 많은 상태를 유지했던 만큼, 재무구조상 추가 차입 여력은 아직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핌코는 동시에 인공지능 투자 확대의 가장 큰 위험으로 과잉투자와 수익화 지연을 지목했다. 인프라를 너무 빠르게 깔아놓고도 실제 서비스 도입과 매출 회수가 늦어지면, 1990년대 후반 광통신 투자 과열기와 비슷한 부담이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최근 중동 전쟁 이후 자산시장 반응을 해석하는 데에도 이어졌다. 핌코는 에너지 가격 상승 우려에도 에스앤드피500 같은 위험자산이 전쟁 이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배경으로 인공지능 투자가 만든 성장 기대를 꼽았다. 반면 채권시장은 유가 상승이 물가와 경기 둔화를 동시에 자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그리고 중앙은행의 제한된 대응 여력을 더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다고 봤다. 다만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되면 채권시장의 위험 프리미엄이 줄어 금리가 내려갈 수 있고, 반대로 전쟁이 길어져도 경기 둔화 우려로 안전자산 수요가 늘 수 있어 채권에는 여전히 투자 매력이 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인공지능 투자 열기가 얼마나 실제 수익으로 이어지느냐에 따라 기술주와 채권시장의 방향이 함께 갈릴 가능성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