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회계법인들의 과열된 수임 경쟁으로 감사보수가 지나치게 떨어지는 흐름에 제동을 걸고, 부실감사 우려가 커질 경우 곧바로 감리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일 윤정숙 전문심의위원 주재로 회계사 200명 이상 규모의 12개 대형 회계법인 감사 부문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감사품질 관리 방안을 논의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조치는 회계업계에서 오랫동안 반복돼 온 낮은 보수 수주 경쟁이 감사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기업 회계감사는 투자자와 채권자, 시장 전반이 기업의 재무상태를 믿을 수 있게 만드는 핵심 장치인데, 보수가 과도하게 낮아지면 필요한 인력과 시간을 충분히 투입하기 어려워진다는 게 당국 판단이다.
실제 감사보수는 최근 하락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외감법(새 외부감사법) 도입 이후 평균 감사보수는 2023년 265만원에서 2026년 246만원으로 낮아졌다. 제도 개편 이후 감사 절차는 한층 엄격해졌는데도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서 회계사들의 업무 부담은 커지고, 반대로 감사 현장에 들어가는 시간과 인력은 줄어드는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윤 위원은 합리적 이유 없이 감사 시간이 지나치게 줄어들면 감사인 감리와 재무제표 심사·감리에 즉시 착수하겠다고 밝혀, 단순한 경고를 넘어 실질 점검에 나서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금감원은 다만 규제만 강화하는 방식보다는 품질 중심의 유인책도 함께 쓰겠다는 입장이다. 감사품질이 우수한 회계법인에는 감사인 지정을 더 확대하는 방향으로 지정제도를 손볼 계획이다. 감사인 지정은 기업이 감사인을 자유롭게 고르지 않고 당국이 일정 기준에 따라 지정하는 제도인데, 여기에 우수 법인의 참여 기회를 넓히면 가격이 아니라 품질로 경쟁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이는 회계시장에서 덤핑 수주를 억제하면서도 성실하게 감사를 수행한 법인에는 보상을 주겠다는 정책 신호로 읽힌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인공지능 기술 활용을 둘러싼 당국과 업계의 온도차도 드러났다. 금감원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 도입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그 전제로 정보보안 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회계업계는 인공지능이 실제 감사 과정에서 비용을 당장 낮추는 수단이 될지는 더 따져봐야 한다고 봤다. 인공지능이 초안을 만들거나 이상 징후를 찾아내더라도 최종 검증은 결국 사람의 책임 아래 이뤄져야 해 오히려 추가 인력과 시간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시스템 개발비까지 감안하면 최근의 감사보수 하락을 상쇄할 만큼 경제성이 있는지 아직 불확실하다는 신중론도 나왔다.
금감원은 더 나아가 자본시장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상장사 심사·감리 주기도 단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재보다 점검 간격을 줄여 코스피 상장사는 10년, 코스닥 상장사는 5년 주기로 들여다보는 체계를 지향하고, 이를 위해 인력 확충과 감리 수단 고도화 방안을 금융위원회와 협의할 예정이다. 오는 24일에는 심사·감리제도 개선 연구 세미나도 연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회계업계에서 값싼 수임보다 감사품질과 책임성에 무게가 실리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