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 두 달여 만에 통화정책과 지급결제, 조직 운영 전반에서 한국은행의 무게중심을 다시 중앙은행 본연의 역할로 옮기기 시작했다. 지난 4년 동안 한국 경제의 구조개혁 의제를 폭넓게 제기했던 이전 기조와 달리, 새 총재 체제에서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그리고 실제 돈이 움직이는 결제 시스템 관리에 더 선명한 우선순위가 실리는 분위기다.
가장 먼저 드러난 변화는 통화정책 메시지다. 신 총재는 지난달 28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강한 신호를 내놨다. 국회 인사청문 과정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취임 뒤에는 시장에 보다 분명한 방향을 전달하는 쪽을 택한 셈이다. 이는 중동 전쟁 여파로 물가 불안이 다시 커지고, 반도체 수출 호조로 성장 전망도 개선되면서 한국은행이 경기보다 물가를 더 경계해야 하는 여건이 형성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제결제은행(BIS) 출신인 신 총재가 실무진이 준비한 문답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직접 설명한 점도, 과도하게 신중하다는 평가를 받던 역대 한은 수장들과는 다른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지급결제 분야는 신 총재 체제에서 특히 존재감이 커지는 영역으로 꼽힌다. 신 총재는 다음 달 1일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리는 유럽중앙은행(ECB) 포럼에서 차세대 지급결제 구상을 담은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한국은행이 추진해온 ‘프로젝트 한강’의 성과와 함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바탕으로 한 예금토큰 구상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예금토큰은 은행 예금을 디지털 형태로 토큰화해 결제에 활용하는 개념이다. 현직 한국은행 총재가 직접 쓴 논문을 국제무대에서 발표하는 일은 드문데, 그만큼 신 총재가 중앙은행의 역할을 금리 결정에만 한정하지 않고 미래 결제 인프라 설계까지 넓게 보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최근 금융결제국과 금융안정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평가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외환시장에 대한 접근법도 달라지고 있다. 신 총재는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이 커지면서 원화 거래가 실제로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는 구조를 반복해서 지적해왔다. 이는 그동안 외환당국이 주로 달러 수급 불균형을 고환율의 원인으로 설명해온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신 총재는 이런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역외 NDF 수요를 국내 선물환(DF) 시장으로 흡수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의 ‘원화 국제화’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원화 거래 기반을 넓혀 시장 가격이 더 투명하게 형성되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으로, 단기 개입보다 시장 구조를 손보는 쪽에 가깝다.
조직 운영에서도 변화 조짐이 나타난다. 신 총재는 최근 하반기 인사를 앞두고 인사경영국장과 인사팀장에 기존 인사 라인 바깥의 인물을 기용했고, 내부적으로는 여러 부서를 두루 거치는 제너럴리스트보다 특정 분야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전문성을 쌓는 스페셜리스트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행은 임직원 근무 만족도 조사도 일회성이 아니라 정례화하기로 했다. 신 총재는 지난 12일 창립 기념사에서 조직문화와 내부 경영을 살펴보며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오는 8월 이후 신임 부총재 인선까지 이어지면 ‘신현송 표’ 한국은행의 색채는 더 또렷해질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한국은행이 금리와 물가뿐 아니라 디지털 결제, 외환시장 구조, 내부 전문성 강화까지 함께 다루는 보다 기능 중심의 중앙은행으로 재편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