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출과 증시 강세를 배경으로 기업들의 자금 집행이 활발해지면서, 기업 어음 발행에 주로 쓰이는 당좌예금 회전율이 2026년 4월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17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4월 예금은행의 당좌예금 회전율은 750.3회로 집계됐다. 이는 2017년 3월의 761.4회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예금 회전율은 일정 기간 은행이 지급한 예금액을 평균 예금 잔액으로 나눈 값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기업이나 개인이 예금을 묶어두기보다 자주 꺼내 써 투자나 소비, 결제 활동이 활발했다는 뜻이다.
당좌예금은 수시 입출금이 가능한 요구불예금의 한 종류로, 기업이 수표나 어음을 발행해 거래 대금을 치를 때 주로 이용하는 계좌다. 이번 회전율 상승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흐름이 좋아지고 주식시장도 강세를 보이면서, 기업들의 투자와 소비 심리가 함께 살아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4월에 거액 어음 결제가 여러 차례 있었고 세금 납부 같은 계절적 요인도 겹치면서 회전율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당좌예금 회전율은 어음 거래가 지금보다 훨씬 활발했던 1999년에는 월평균 1천회를 넘겼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대체로 월평균 400회에서 700회 사이에서 움직였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최근 수치는 기업 자금 흐름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는 신호로 읽힌다. 당좌예금과 보통예금, 가계종합예금 등을 모두 포함한 요구불예금 회전율도 4월 23.1회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지난해 12월 23.6회로 2015년 12월의 24.6회 이후 10년 만에 최고를 기록한 뒤 올해 1월 21.5회, 2월 19.1회로 낮아졌다가 3월 23.5회, 4월 23.1회로 다시 올라왔다.
정기예금과 정기적금이 포함된 저축성예금 회전율은 4월 월 1.7회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던 지난해 12월과 같은 수준이었다. 이는 증시 호조 속에 은행 예적금에 머물던 자금이 주식 등 다른 투자처로 이동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도 수출 경기와 금융시장 분위기가 유지될 경우 계속될 가능성이 있지만, 기업의 일시적 대금 결제나 세금 납부 같은 단기 요인도 함께 작용한 만큼 추세적 변화인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