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시장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비트코인의 상승세와 함께 ‘알트코인 시즌’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바로 ‘토큰 보유자 보호’다.
지금의 암호화폐 시장은 기술의 진보에 비해 법적·제도적 기반이 지나치게 빈약하다. 수많은 프로젝트가 토큰을 발행하고 있지만, 그 구조와 권한, 수익 배분 방식은 불투명하다. 투자자는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수익이 어떻게 분배되는지조차 알기 어렵다. DAO가 예고 없이 추가 토큰을 발행하거나, 창립자가 보유 물량을 장외에서 비공개로 매도하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 시장을 떠도는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실제로 무엇이 약속되고 실행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만 잘 만들면 자금이 몰리는’ 기형적 구조가 생겨났다. 여기서 말하는 ‘내러티브’란, 실질적인 수익이나 성과보다 미래의 비전이나 기대감을 중심으로 투자자 심리를 자극하는 전략을 뜻한다.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내러티브에만 매달리는 투자 행태는 이른바 ‘호피엄(hopium)’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시장을 지속시키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 신뢰와 수익, 구조의 투명성이 뒤따르지 않는 내러티브는 결국 거품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한켠에서는 조용한 변화가 감지된다. 하루 수익이 100만~200만 달러에 이르는 파생 DEX ‘하이퍼리퀴드’, 연간 1억 달러가 넘는 게임 수익을 올리는 ‘셔플’, 그리고 온체인 사모 대출 시장을 개척한 ‘메이플 파이낸스’ 등 실질 수익을 올리는 프로젝트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기술이 아닌 실질 매출로 가치를 증명하며, 내러티브의 시대가 저물고 ‘현금흐름 기반의 가치 평가’가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분야는 ‘탈중앙 물리 인프라 네트워크(DePIN)’다. 실시간 위성 위치정보를 제공하는 ‘지오드넷’이나, 사용자 데이터를 수집해 수익화하는 ‘그라스’ 등은 수백만 달러의 반복 수익(ARR)을 기록하며 기존 블록체인과는 다른 실물 기반의 경제 구조를 제시하고 있다. 블록체인이 현실에 닿는 길목에서, DePIN은 새로운 산업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 막 출범한 새 정부는 이 같은 흐름을 놓쳐선 안 된다. 디지털 자산을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고 선언했다면, 그 시작은 ‘보호’에서 출발해야 한다. 토큰 보유자의 권리를 명확히 하고, 수익 분배와 발행 구조를 제도적으로 규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지 규제 강화가 아니라, 신뢰 회복과 장기적 자본 유입의 조건이기도 하다.
내러티브로는 시장을 설득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실질 수익과 투명한 구조, 그리고 법적 안정성 위에서 가능하다. 암호화폐 시장이 진정한 산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 지금이야말로 ‘투자자 보호’라는 기본부터 바로 세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