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역전’을 꿈꾸며 암호화폐 시장에 뛰어든 투자자들에게 지난 몇 개월은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는 현기증 나는 ‘희망 고문’의 연속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수십 퍼센트가 오르는 ‘대박’의 환상 뒤에는, 언제 반토막 날지 모르는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시장의 문법이 근본부터 바뀌고 있다. ‘얼마에 팔아치울까’를 고민하던 투기판의 시대가 저물고, ‘얼마나 꾸준히 버는가’를 따지는, 이른바 ‘디지털 월세’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금융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이는 필연적인 진화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성숙한 시장일수록 시세 차익보다는 따박따박 들어오는 임대료나 배당 같은 현금 흐름(Cash Flow)을 중시한다. 주식, 채권 등 전통 금융 자산의 60% 이상은 보유만 해도 수익을 낸다. 반면 덩치만 커진 코인 시장에서 스스로 수익을 낳는 자산은 고작 10% 남짓에 불과했다. 이 기형적인 격차가 메워지는 과정이 바로 2025년 시장의 핵심 화두다.
변화의 조짐은 뚜렷하다. 첫째, ‘장롱 속 현금’ 취급받던 스테이블코인이 ‘이자 받는 통장’으로 변신했다. 지금까지 코인 투자자들은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히 투자 대기 자금으로 묵혀뒀다. 하지만 이자 한 푼 안 주는 돈을 금고에 모셔둘 바보는 없다. 국채 이자 등을 통해 가만히 있어도 1달러가 1.05달러로 불어나는 새로운 코인들이 등장하자, 시장의 자금은 썰물처럼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돈이 놀지 않고 일하게 하는 것’, 이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둘째, 월가(Wall St.)의 거인들이 ‘건물주’가 되기 위해 들어오고 있다. 블랙록이나 프랭클린 템플턴 같은 세계적인 자산운용사들이 국채와 사모 신용을 블록체인 위로 옮겨오고 있다. 이들은 변동성이 큰 코인 가격 맞추기 게임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블록체인이라는 효율적인 인프라 위에서,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챙기는 ‘디지털 금융의 건물주’가 되려 한다. 올 상반기에만 이 실물연계자산(RWA) 시장이 2.6배나 급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셋째, 코인 시장의 ‘자본 효율성’은 기존 금융의 상식을 파괴한다. 현실에서 아파트는 대출 담보로 잡히면 다른 용도로 쓰기 어렵다. 하지만 디지털 금융에서는 내 자산이 이자를 받으면서, 동시에 대출의 담보가 되고, 또 다른 투자의 재원이 된다. 돈 한 푼이 동시에 두세 명 몫의 일을 하며 수익을 극대화하는 구조다.
시장은 이제 ‘누가 더 비싼 가격을 부르나’ 하는 눈치 게임에서 탈피하고 있다. 2025년 암호하폐 시장의 승패는 자극적인 등락 폭이 아니라, 얼마나 안정적이고 투명한 ‘수익 구조’를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투자자들의 시선 또한 교정되어야 한다. 벼락부자를 꿈꾸며 ‘한 방’을 노리는 투기적 접근은 이제 유효하지 않다. 대신 내 자산이 매일매일 어떤 부가가치를 생산하고 있는지, ‘월세’가 제대로 들어오고 있는지를 따져보는 ‘투자자’의 안목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