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 이더리움 롱 포지션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21억 달러는 1만 달러가 되었고, 남은 것은 8억6,900만 달러의 손실이었다. 시장은 또 하나의 오래된 진실을 확인했다. 레버리지는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지난 2월 11일, 온체인 분석업체 아캄 인텔리전스는 단 한 줄로 시장을 흔들었다. “트렌드 리서치 최종 손익: 마이너스 8억6,900만 달러.” 잭 이가 이끌던 트렌드 리서치는 한때 아시아 최대 규모의 이더리움 롱 포지션을 보유한 기관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1만 달러 남짓의 스테이블코인뿐이다. 이는 투자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오판의 결과다.
잭 이는 무능한 투자자가 아니었다. 그는 2025년 4월, 이더리움이 1,300달러대까지 붕괴했을 때 과감히 매수에 나섰고, 10월 4,700달러 부근에서 대규모 차익을 실현했다. 대폭락 직전 시장을 빠져나온 판단 역시 정확했다. 문제는 이 성공이 다음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는 점이다.
2025년 10월, 대규모 청산 사태 직후 그는 다시 시장에 들어왔다. 이번에는 방식이 달랐다. 현물이 아니라 레버리지였다. DeFi 대출 프로토콜을 활용한 이른바 ‘레버리지 루프’ 전략이었다. ETH를 담보로 맡기고 스테이블코인을 빌려 다시 ETH를 사는 구조다. 상승장에서는 수익이 커지지만, 하락장에서는 탈출구가 없다.
DeFi의 청산 시스템은 인간의 판단을 허용하지 않는다. 담보비율이 무너지면 즉시 청산된다. 전화도, 협상도 없다. 코드가 법이다. 트렌드 리서치는 평균 3,267달러에 매입한 ETH를 평균 2,055달러에 강제로 처분해야 했다. 65만 개가 넘는 ETH가 투매됐고, 총 13억 달러 규모의 매각이 발생했다. 포지션은 붕괴됐고 선택권은 사라졌다.
아이러니는 그의 말과 행동 사이의 괴리였다. 그는 청산 직전까지도 강세 전망을 고수했다. ETH 1만 달러, 비트코인 20만 달러를 언급하며 매각은 “리스크 관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은 확신을 보상하지 않는다. 2월 초 주요 지지선이 연쇄적으로 붕괴되자, 그의 포지션은 스스로를 지킬 힘을 잃었다.
이번 사태는 DeFi의 투명성이 가진 역설도 드러냈다. 모든 거래가 실시간으로 공개되면서 청산 위험은 시장 전체에 노출됐다. 이는 공포를 증폭시켰고, 가격 하락을 가속했다. 전통 금융에서는 며칠 뒤에야 드러날 붕괴가, DeFi에서는 즉시 집단 심리로 번졌다. 투명성은 장점이지만, 동시에 변동성을 키우는 촉매가 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항복 신호’로 해석한다. 대형 매도자가 떠난 자리가 바닥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런 해석은 사후적 위안에 가깝다. 핵심은 단순하다. 레버리지는 수익을 키우는 도구가 아니라, 선택권을 포기하는 계약이다. 현물이었다면 버틸 수 있었을 포지션도, 레버리지는 시장에 운명을 맡긴다.
잭 이는 바닥과 꼭대기를 모두 경험한 투자자다. 그의 분석 능력을 폄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암호화폐 시장은 능력보다 구조에 냉정하다. 단 한 번의 레버리지 오판이면, 수년의 성공은 무의미해진다.
21억 달러에서 1만 달러로. 이것이 레버리지의 본질이다. 시장은 늘 그 사실을 증명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