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써클)이 2025년 6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공모가 $31 기준 밸류에이션 약 $80억으로 시작했지만, 상장 첫날 168% 급등하며 시가총액이 $167억을 넘어섰다. 같은 시기 Tether(테더)는 2024년 연간 순이익이 $130억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Hyperliquid(하이퍼리퀴)는 VC 투자 한 푼 없이 탈중앙화 파생상품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했다. Polymarket(폴리마)은 공식 수익이 $0인 채로 뉴욕증권거래소 모회사 ICE로부터 $20억 투자를 받아 기업가치 $90억을 인정받았다.
같은 크립토 시장에서, 정반대의 방식으로 운영하는 회사들이 동시에 기록을 쓰고 있다.
한국 크립토 업계는 이 뉴스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우리도 IPO를 준비해야겠다", "역시 비공개가 답이다", "VC 없이 가야 한다", "수익 없어도 투자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을 각자 내렸을 것이다. 넷 다 틀렸다.
결과를 보고 전략을 거꾸로 읽는 병
한국 크립토 업계에는 고질적인 습관이 하나 있다. 성공한 기업의 결과를 보고, 그 결과를 만든 전략을 역방향으로 읽는 것이다.
2021년 특금법 시행으로 원화 거래까지 정상적으로 영업 가능한 거래소는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5곳만 남았고, 50개 이상의 나머지 거래소는 즉시 폐업하거나 코인마켓으로만 연명하다 시장에서 도태될 위기에 놓였다. 이후 업계는 "규제 수용이 답"이라고 읽었다. 그런데 이 네 곳이 살아남은 건 규제가 발표된 후 서류를 갖췄기 때문이 아니다. 특금법 시행 전부터 시중은행 실명계좌를 확보해 온 거래소는 5곳에 불과했으며, 대다수 거래소는 마감 기한이 임박해서야 부랴부랴 움직이다 결국 요건을 맞추지 못했다. 결과는 라이선스였지만, 전략의 본질은 타이밍이었다.
테더가 $130억 순이익을 기록하자 업계는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읽었다. 그런데 테더는 정기 감사 대신 분기별 어테스테이션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며, 이는 규제당국과 업계 일부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점유율은 오른다. USDT가 이미 달러 대체재로 전 세계에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신뢰를 쌓지 못한 팀이 같은 방식으로 침묵하면, 그건 전략적 비공개가 아니라 그냥 불투명함이다.
하이퍼리퀴드는 VC 투자 없이 자체 레이어1 체인을 구축하고 월 $3,000억 규모의 거래량을 처리하며 탈중앙화 파생상품 시장의 60% 이상을 장악했다. 이를 보고 업계는 "VC 없이 가면 된다"고 읽었다. 그런데 하이퍼리퀴드가 외부 투자를 거절할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제품 자체가 수수료 수익을 냈기 때문이다. 창업자 Jeff Yan은 "VC에게 수백만 달러를 받는 건 내게 가짜처럼 느껴졌다"고 말했지만, 이는 수익이 있었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돈을 못 버는 제품을 붙들고 "우리도 VC 없이 간다"고 하면, 그건 철학이 아니라 자금난이다.
폴리마켓은 $235억의 누적 거래량을 기록하면서도 공식 프로토콜 수익은 $0이다. 수수료를 받지 않고, 포지션 보유자에게 연 4% 보상까지 지급하며, 사실상 VC 자금으로 유동성을 사들이고 있다. 그런데도 2025년 10월 뉴욕증권거래소 모회사 ICE가 $20억을 투자하며 기업가치를 $80억으로 평가했다. 이를 보고 업계는 "수익 없어도 된다"고 읽었다. 그런데 폴리마켓이 수익 없이 $90억 밸류에이션을 받은 건 예측시장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금융 인프라로 재정의되는 시점에, 가장 많은 유동성과 사용자를 가진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수익이 없는 게 아니라 수익화 이전에 시장을 독점하는 전략이었다. 그 전략이 가능했던 건 2024년 미국 대선에서 주류 여론조사가 "초박빙"을 외칠 때 폴리마켓의 배당률이 트럼프 당선을 일찍 정확하게 가리켰고, $37억의 베팅이 전통 여론조사보다 먼저 결과를 맞힌 덕분에 월스트리트와 규제당국의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카테고리를 재정의한 플랫폼이었기에 가능한 밸류에이션이었다. 카테고리 재정의 없이 수익만 없는 프로젝트는 그냥 적자다.
2022년 11월 DAXA가 위믹스 상장폐지를 결정하자 가격은 하루 만에 70% 넘게 폭락했다. 시가총액 기준 하루 만에 3,500억 원이 증발했다. 위메이드가 해외로 나간 건 국내 P2E 규제가 사업 모델 자체를 막았기 때문이었다. 선택지가 없어서 개척한 길이었다. 수익 모델도 검증되지 않은 채 "글로벌 P2E"를 외친 후발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2022년 시장 침체와 함께 사라졌다.
전략은 상황에서 나온다, 모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써클은 2015년 뉴욕주 BitLicense를 최초로 취득했고, 이후 규제 준수를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왔다. USDC의 주요 고객이 기업 재무팀과 기관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USDC를 쓰려면 써이 감사를 받고, 준비금을 공개하고, 상장사여야 한다. 투명성이 마케팅이 아니라 제품의 일부인 구조다.
테더의 침묵은 전략이 아니라 포지션에서 나왔다. USDT가 이미 시장을 장악했기 때문에 침묵해도 됐다. 신뢰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먼저 쓰이고 있었다.
하이퍼리퀴드는 단 12명의 팀으로 직원 1인당 $1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기록했다. 전체 토큰 공급량의 31%를 에어드랍했고, VC 투자가 없었기 때문에 투자자 할당분이 없어 대부분이 커뮤니티에 돌아갔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제품이 먼저 돈을 벌고 있었다.
폴리마켓은 수익 없이도 기관 자금을 끌어들였지만, 그건 수익화 전략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2022년 CFTC 제재로 미국 시장에서 퇴출된 후 3년을 버티며 규제 재진입을 준비했고, 2025년 CFTC 등록 거래소를 $1억1,200만에 인수하며 미국 시장에 합법적으로 복귀했다. 익을 미루는 게 전략이었고, 그 전략이 가능했던 건 예측시장이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새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 회사의 전략이 전부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전략은 사업 구조에서 나온다. 사업 구조가 다르면 전략도 달라야 한다.
한국 크립토 업계의 문제는 이 순서가 뒤집혀 있다는 것이다. 사업 구조를 먼저 보는 게 아니라, 성공한 결과를 먼저 보고 전략을 고른다. 그리고 그 전략을 자기 사업 구조에 억지로 끼워 맞춘다.
지금 당신 팀에게 필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전략을 고르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리 제품은 지금 실제로 돈을 버는가. 우리 사업에서 신뢰의 원천은 무엇인가. 규제를 수용했을 때 그게 해자가 되는 구조인가, 아니면 그냥 비용인가. VC 없이 간다는 건 철학인가, 아니면 투자를 못 받는 것인가. 수익을 미루는 게 카테고리를 만드는 전략인가, 아니면 그냥 수익 모델이 없는 것인가.
이 질문들에 솔직하게 답하면, 전략은 고르는 게 아니라 보이는 것이다.
써클, 하이퍼리퀴드, 폴리마켓, 테더 중 누가 옳은지 묻는 건 잘못된 질문이다. 당신의 사업이 어떤 구조인지가 먼저다. 그 답이 없는 상태에서 남의 플레이북을 가져오면, 한국 크립토 업계가 지난 몇 년간 반복해온 실수를 한 번 더 반복하는 것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