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며 국제 유가가 다시 세 자릿수로 치솟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최근 이란의 핵시설을 공습한 데 이어, 이란이 보복 공격을 감행하면서 유가 급등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JPMorgan은 현재 시장이 걸프만 원유 흐름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할 확률을 20%로 반영하고 있으며, 최악의 경우 배럴당 유가가 120~130달러(약 173,000~187,000원)까지 오를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번 사태의 향방은 이란의 대응 수위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 지난 월요일 이란은 카타르에 주둔한 미군 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이는 이란이 보다 광범위한 확전을 원치 않음을 나타내는 '통제된 대응'이라 해석되며 시장은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미국이 추가적인 공격에 나설 경우, 이란이 전략적 해상길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다만 이 경우 이란 역시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되는 만큼 실제 실행 가능성은 낮게 평가되고 있다.
실제 데이터 분석 플랫폼 폴리마켓에 따르면 이란이 이번 달 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할 가능성은 월요일 25%에서 12%로 하향 수정됐다. 골드만삭스는 현 유가 수준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뒤 1년간 10% 수준으로 정체된다면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약 158,000원)까지 오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프라 타격이나 제재 강화로 이란산 원유의 공급이 반감되는 경우에도 90달러 선까지 상승할 수 있지만, 결국 2026년에는 다시 하향 안정세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이다. 당시 유가 급등은 미국의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하며 정책 금리 인상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이번에는 다소 다른 양상이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라이언 스위트는 유가가 10달러 오를 때마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약 0.5%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도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번 유가 상승 역시 미 연준의 금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그 배경에는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의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점이 있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역사적으로 유가가 10% 지속 상승하더라도 근원 인플레이션은 겨우 몇 베이시스포인트만 변동한다"며 "이러한 수준은 통계적 잡음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고유가가 소비 지출에 부담을 주고 경제성장을 둔화시켜 연준의 금리 인하 요인을 뒷받침하는 '비인플레이션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유가 급등 시나리오에 대비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되는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 이번 중동발 파장이 예상보다 일시적일 수 있다는 점도 경계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극단적 조치는 국제 공조 및 자국 경제 피해 리스크를 고려할 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