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런던 중심부에 유럽 최대 규모의 대사관 건립을 추진하면서, 주민들과 보안 전문가들 사이에서 상당한 반발이 일고 있다. 로열 민트 코트 부지에 들어설 이 대사관에 대해 안보 위협, 역사적 가치 훼손, 인권 우려 등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018년 영국 왕실이 소유했던 옛 왕립 조폐국 부지, 면적 약 2만 제곱미터 규모의 로열 민트 코트를 2억5천500만 파운드(한화 약 4천768억 원)에 매입했다. 런던탑 맞은편의 이 장소는 원래 1809년부터 1975년까지 영국 동전이 제조됐던 역사 유적인 곳이다. 중국 정부는 현재 런던 메릴본에 위치한 대사관을 이곳으로 이전하고, 새로운 대사관을 유럽 최대 규모로 신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건물에는 외교 인력 200명 이상이 거주할 직원용 숙소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주변 지역 주민들의 반대는 날로 거세지고 있다. 주민들은 중국이 건물주라는 위치를 이용해 무단 출입이나 감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실제로 일부 주민은 일상적인 사진 촬영조차 간첩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다며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인권 문제나 대만·홍콩 이슈와 관련해 자주 발생하는 시위와 이에 따른 소란 가능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런던 경찰 측은 대사관 인근에서의 운송 체증과 관광객 감소 등 실질적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이 부지에 외국 대사관을 세우는 것에 대한 문화적 반감도 존재한다. 조폐국 부지는 영국 산업사의 상징성과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장소로, 왕립 유산에 가까운 평가를 받는다. 일부 시민은 이를 ‘왕실 보석을 팔아넘기는 것’에 비유하며 국가 유산을 외국 정부에 넘기는 결정 자체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로열 민트 코트를 관리하는 자치단체인 타워 햄리츠 구의회는 2022년 반체제 인사들의 안전 우려와 지역 정서 등을 이유로 처음에는 대사관 건축 계획을 불허했다.
하지만 지난해 총선에서 노동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상황이 뒤바뀌었다. 중국 정부는 올해 8월 노동당 출범 직후 다시 건축 신청을 제출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간 통화 이후 영국 중앙 정부는 허가 권한을 자치단체에서 이관 받아 직접 심사에 들어갔다. 현재 최종 결정은 앤절라 레이너 부총리의 책임 하에 있으며, 그의 결정은 오는 9월 9일까지 나올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측이 제출한 건축 설계 도면 일부가 누락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국제 외교 관계와 국내 안보·인권 가치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영국 정부의 고민을 드러낸다. BBC 등 현지 언론은 영국이 장기적인 중국과의 경제 협력과 외교적 실익을 중시할지, 아니면 안보와 인권 문제를 우선시할지를 놓고 중요한 국면에 들어섰다고 평가하고 있다. 향후 결정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이는 유럽 내 다른 국가들의 미·중 외교 전략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