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가이드라인 시행 뒤 멈춰 있던 일부 기업공개(IPO) 심사가 다시 움직이고 있다. 다만 8월 신규 상장 일반기업 6곳 중 5곳이 공모가를 밑돌면서 공모주 투자심리 회복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3일부터 중복상장 가이드라인과 개정 상장·공시규정을 시행했다. 적용 대상은 상장사가 실질적으로 지배하거나 수직적 지배관계에 있는 비상장 자회사를 국내외 증시에 상장하는 경우다.
새 기준은 모회사 이사회에 △주주 영향평가 △주주보호 방안 마련 △주주 의사 확인 △이사회 찬반 결의 △공시 의무를 부과한다. 자회사는 모회사로부터 영업·경영의 독립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물적분할 자회사에는 모회사 주주동의가 필요하고,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3%를 초과 보유한 주주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3%룰’도 적용된다.
중복상장은 모회사가 지배하는 자회사를 별도 상장하는 구조다. 자회사에는 독립적인 자금조달 창구가 생기지만, 모회사 일반주주에게는 핵심 사업 가치가 분리될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이번 가이드라인은 이런 이해 충돌을 상장 심사와 공시 절차에서 먼저 점검하겠다는 취지다.
규제 윤곽이 정해지면서 장기간 지연됐던 중복상장 후보 심사도 일부 재개됐다. 덕산하이메탈 자회사 덕산넵코어스와 다산네트웍스 자회사 디티에스는 가이드라인 초안을 반영해 지난 7월 20일 코스닥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했다.
IPO 시장은 상반기 공급이 크게 줄었다. 아이알큐더스는 올해 상반기 신규 상장사가 17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8곳보다 55.3% 감소했다고 집계했다. 공모 규모도 2조2095억원에서 1조1327억원으로 48.7% 줄었다.
하반기 들어 공모 절차는 늘었지만 성과는 엇갈렸다. 삼성증권은 8월 스팩을 제외한 일반기업 6곳이 상장해 2106억원을 공모했다고 밝혔다. 8월 상장 종목의 기관·일반투자자 청약 경쟁률은 지난 7월 말까지의 평균을 밑돌았고, 기관의 의무보유확약 신청률과 배정률도 낮아졌다.
상장 뒤 흐름도 약했다. 지난 3일 종가 기준 8월 코스닥시장에 신규 상장한 일반기업 6곳 가운데 인제니아테라퓨틱스를 제외한 5곳이 공모가를 밑돌았다. 높은 일반청약 경쟁률과 증거금을 기록하고도 상장 이후 주가가 공모가 아래로 내려간 사례가 이어졌다.
9월 첫 상장사인 스카이랩스도 수요예측 단계에서는 부진했다. 공모가는 희망 범위 1만3000~1만6000원보다 낮은 1만원으로 확정됐다.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은 63.41대 1, 일반청약 경쟁률은 2.85대 1이었다.
다만 상장 첫날 주가는 다른 흐름을 보였다. 스카이랩스는 지난 4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뒤 공모가보다 15% 낮은 8500원에 거래를 시작했지만 2만3500원으로 마감했다. 공모가 대비 상승률은 135%였다.
중복상장 후보 가운데서는 덕산넵코어스가 첫 시험대에 오른다. 모회사 덕산하이메탈은 앞서 주주총회에서 자회사 상장 동의를 받고 자회사 주식 현물배당 방안도 마련했다. 본지는 앞서 자회사 상장이 모회사 일반주주 보호 절차와 맞물린다고 전한 바 있다.
HD현대로보틱스도 제도 적용 대상에 거론된다. 이 회사는 2020년 HD현대의 로봇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설립됐고, HD현대가 지분 81.82%를 보유하고 있다. IPO를 추진하려면 HD현대 주주총회에서 3%룰을 적용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주관사단은 상장 재개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예비심사 청구 전 주주보호 방안과 주주 설득 절차가 남아 있다.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상장으로 받을 영향과 보완책을 먼저 설명해야 하는 만큼, 예전보다 사전 절차 부담이 커진 구조다.
강영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사전 수요예측과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 도입 등 공모 관련 제도 개선과 무신사, 메가존클라우드, 리벨리온 등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상장을 추진할 유니콘기업들이 점차 가시화되면서 투자자들의 공모주 관심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제도 개선과 대형 비상장사의 상장 추진이 공모주 시장의 수요 회복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취지다.
윤철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증시 불안정으로 인해 공모주 시장의 투심 회복이 더디다”고 말했다. 중복상장 규제는 심사 기준을 분명히 했지만, 공모주 시장에서는 상장 이후 가격 흐름과 기관 수요가 여전히 기업별로 갈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