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투자 확대로 메모리 반도체 공급난이 심해지면서 글로벌 증시에서는 반도체 생산업체와 관련 부품 기업은 급등하고, 메모리칩을 사서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하드웨어 기업은 수익성 압박에 시달리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블룸버그 통신은 13일 이런 시장 재편 현상을 전하며,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 마이크론 같은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가격 급등의 직접적인 수혜를 누리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이익이 48배 늘어난 데 힘입어 최근 대만 티에스엠시(TSMC)에 이어 아시아 기업 가운데 두 번째로 시가총액 1조달러에 올라섰다. 디램과 낸드플래시처럼 인공지능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대량으로 들어가는 메모리 제품의 몸값이 뛰면서, 그동안 경기 변동에 따라 실적이 크게 흔들리던 메모리 업종이 다시 시장 중심으로 올라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혜는 메모리 반도체 본업에만 그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기술 장벽이 낮은 저장장치와 관련 부품 업종도 함께 강세를 보였다. 미국 플래시 메모리 제조사 샌디스크는 올해 들어 주가가 500% 이상 올랐고, 일본 키옥시아도 같은 기간 360% 넘게 상승했다. 이는 인공지능 확산으로 고성능 연산 장비뿐 아니라 데이터를 저장하고 불러오는 기반 장치 수요까지 동시에 늘어난 결과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메모리칩이 범용 부품, 즉 누구나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 저부가가치 제품으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인공지능 투자의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병목 품목으로 위상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반면 메모리 반도체를 사들여 완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들은 원가 부담이 커지며 주가가 약세를 보였다. 일본 닌텐도는 메모리칩 가격 급등이 게임기 수익성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올해 초 이후 주가가 30% 넘게 떨어졌다. 중국 샤오미는 스마트폰과 전기차 생산에 들어가는 부품 비용 부담이 부각되며 20% 하락했고, 일본 캐논도 10% 내렸다. 미국 피시 제조사 에이치피(HP) 역시 메모리 품귀 영향을 받으며 연초 이후 주가가 4.7% 하락했다. 같은 부품 가격 상승이라도 누군가에게는 판매단가 인상 요인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제조원가 급등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이번 현상은 메모리 반도체가 더 이상 단순한 경기민감 품목이 아니라는 점도 보여준다. 블룸버그 분석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기업들의 실적 발표에서 메모리칩 가격 문제가 언급된 사례는 550차례를 넘었는데, 이는 관련 연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9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페퍼스톤그룹의 마이클 브라운 수석 리서치 전략가는 메모리 수급 불균형이 당초 우려를 넘어선 데다 장기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공지능 수요가 계속 커진다면 공급 확대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해 이런 흐름은 2030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결국 앞으로는 메모리 반도체 확보 능력이 기업 실적과 산업 경쟁력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