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으로 반도체와 자동차 부품 설계 속도를 끌어올리는 영국 스타트업 피직스엑스(PhysicsX)가 대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설계와 시뮬레이션에 걸리는 시간을 ‘수시간~수일’에서 ‘수초’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기술력이 시장에서 다시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피직스엑스는 10일(현지시간) 시리즈C 투자 라운드에서 3억달러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원화로는 약 4563억 원 규모다. 이번 라운드는 기존 투자자인 테마섹이 주도했고, 엔비디아($NVDA),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 지멘스($SIE) 등이 참여했다. 이번 투자로 피직스엑스의 기업가치는 24억달러, 약 3조6504억 원으로 평가됐다.
하드웨어 설계는 보통 초안 작성, 시뮬레이션, 성능 검증, 설계 수정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반도체와 자동차 부품, 항공기 부품처럼 복잡한 제품일수록 최적 설계에 도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은 통상 수년이 소요될 수 있어, 개발 기간 단축은 제조업 전반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핵심 기술과 작동 방식
피직스엑스는 이런 병목을 인공지능으로 줄이겠다는 전략을 내세운다. 회사에 따르면 자사 플랫폼은 기존 방식으로 수시간 또는 수일이 걸리던 일부 공학 계산과 설계 작업을 몇 초 만에 처리할 수 있다. 핵심은 물리 현상을 계산하는 편미분방정식(PDE) 풀이를 더 빠르게 수행하는 ‘뉴럴 오퍼레이터’ 알고리즘이다.
편미분방정식은 시스템이 실제 환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하는 데 쓰인다. 예를 들어 칩 내부 전류의 세기와 발열의 관계, 자동차 부품의 공기저항, 엔진과 에너지 시스템의 작동 조건 등을 분석할 때 활용된다. 다만 전통적 방식으로는 계산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
피직스엑스는 뉴럴 오퍼레이터가 과거에 풀었던 유사 문제의 결과를 재활용해 계산 과정을 단축한다고 설명했다. 모든 물리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수행하는 대신, 비슷한 조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 빠른 예측을 내놓는 구조다. 이를 통해 설계 반복 주기를 줄이고, 엔지니어가 더 많은 시안을 시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자코모 코르보(Jacomo Corbo)는 “항공기, 반도체, 엔진, 에너지 시스템 같은 물리 경제의 어려운 문제는 결국 엔지니어와 기계 운영자가 기초 물리를 얼마나 빠르고 정밀하게 다룰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데이터와 사업 확장
이 회사는 자체 생산한 엔지니어링 데이터셋으로 일부 AI 모델을 훈련한다. 자동차 시뮬레이션의 경우 ‘데이터 팩토리’라는 도구를 통해 내부 기준 설계 260종의 변형안을 자동 생성하고, 이를 학습 데이터로 활용한다. 이렇게 만든 모델은 자동차 부품의 형상을 더 공기역학적으로 바꾸거나, 여러 물리 현상이 동시에 작용하는 ‘멀티피직스’ 시뮬레이션을 수행하는 데 쓰인다.
피직스엑스는 AI 모델 외에도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정리하는 ‘시뮬레이션 워크벤치’와 기업별 프로젝트에 맞춰 플랫폼을 손쉽게 조정할 수 있는 각종 템플릿을 제공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용 기계, 자동차를 포함해 6개 이상의 산업 분야 고객이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 중이라고 회사는 밝혔다.
사업 성장세도 가파르다. 피직스엑스는 지난 1년간 강한 수요에 힘입어 예약 매출이 3배로 늘었고, 직원 수도 300명으로 두 배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확보한 자금은 해외 시장 확장과 더 고도화된 AI 모델 학습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번 투자 유치는 생성형 AI 열풍이 소프트웨어를 넘어 ‘산업 설계’ 영역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반도체와 자동차처럼 설계 오류 비용이 큰 분야에서는 개발 속도와 정확도를 동시에 높이는 AI 도구의 중요성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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