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기업으로 위장한 러시아계 미국 거주자가 사실은 거물급 돈세탁업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뉴욕 검찰은 9일(현지시간), 암호화폐 결제 플랫폼 '에비타페이(Evitapay)'를 운영하던 유리 구그닌(38)을 자금세탁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고 밝혔다. 구그닌은 러시아 고객을 중심으로 약 5억3천만 달러(약 7,200억원)를 미국 금융시스템을 통해 세탁한 것으로 조사됐다.
겉보기엔 성공한 암호화폐 기업가였던 그는 2022년 뉴욕에 정착하면서 특기자(O-1A) 비자를 받고 사업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자금 추적을 회피하려는 전략이 숨어있었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보낸 암호화폐를 여러 가상지갑과 미국 내 계좌를 거쳐 송금했고, 이 과정을 통해 돈의 출처를 감췄다.
이렇게 '세탁'된 자금은 미국 달러 등 문제없는 법정통화로 위장돼, 고객이 원하는 구매처에 전달됐다. 한국 기업도 이 자금 흐름에 걸려들었다. 작년 3월, 구그닌은 홍콩의 한 무역회사를 거쳐 한국 업체 계좌로 자금을 보냈다. 해당 한국 기업은 이를 대가로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한 업체에 장비와 부품을 보내는데, 이 업체는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의 관계사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구그닌은 러시아인들이 미국산 서버 등 첨단제품을 구매하는 데도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제품은 대러 수출 통제 조치로 직접 구매가 불가능한 물품이었다.
검찰 공소장에는 은행 사기, 송금 사기, 제재 회피, 수출 규제 위반 등 총 22가지 혐의가 포함됐다. 미 법무부는 구그닌이 암호화폐 기업 간판을 걸고 이를 제재 회피 수단으로 악용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암호화폐를 이용해 더러운 뒷돈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들었고, 러시아가 미국의 고급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왔다"며, 구그닌이 미국 금융시스템의 허점을 노렸다고 지적했다.
수사 결과가 구체화됨에 따라, 암호화폐 기반 결제 시스템이 국제 제재를 우회하는 통로로 오용될 가능성에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