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 자산 과세 정보 공유를 골자로 하는 국제 제도, 일명 ‘CARF(Crypto-Asset Reporting Framework)’에 60개국 이상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로써 2027년부터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 투명성이 세계적으로 본격화될 전망이다. 초기 시행 대상은 영국과 유럽연합(EU)이며, 싱가포르, 아랍에미리트(UAE), 홍콩, 미국은 2028년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이 같은 변화는 기존의 익명성을 중시해온 암호화폐 생태계에 중대한 전환점을 의미한다.
표면적으로는 규제 강화로 보이지만, 이는 오히려 암호화폐 시장이 제도권 안에서 책임 있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조치라는 해석도 뒤따른다. 무엇보다 CARF는 단순한 연례 신고를 넘어, 거래에 가까운 실시간 수준의 과세 정보 교환을 요구한다. 이는 기관 중심의 중앙화 거래소는 물론, 비수탁형 지갑과 탈중앙화 거래소(DEX), 단독으로 자금 이동을 지원하는 개인 사업자까지 보고 의무 대상에 포함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
각국은 본격적인 보고 시행 1년 전에 국내법을 개정해야 하며, EU 회원국은 2025년까지 세부 규정을 자국 법률에 이식해야 한다. 따라서 이르면 2026년 1월부터 주요 규정이 실제로 적용된다. 암호화폐 서비스 제공업체 입장에서는 기존에 없던 기록 및 보고 체계를 새롭게 구축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오랜 기간 자유로운 자산 이동이 가능했던 암호화폐는 이제 감시와 기록 아래 놓이게 된다. CARF는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수단이며, 나아가 제도권 참여를 원하는 기관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제공하는 환경을 조성한다. 전 세계적으로 탈세로 인해 연간 약 4270억 달러(약 593조 3,000억 원)의 세수가 증발하는 상황에서, 정부들이 암호화폐를 사각지대로 남겨두지 않으려는 현실적 응답인 셈이다.
비록 개인정보 보호를 중시하는 사용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있으나, CARF는 암호화폐 산업의 *정당성 확보*를 위한 마중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제도화가 진입 장벽을 낮추면, 이제껏 진출을 주저하던 기관 자금도 본격 유입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가격 안정성과 유동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향후엔 이용자 개인의 세금 신고도 간소화될 전망이다. 플랫폼이 과세 당국과 거래 데이터를 자동 공유하면, 매년 복잡한 손익 계산 없이 손쉽게 신고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일부 익명성과 사용 편의성은 줄어들 것이다. 질문이 늘어나고, 일부 절차가 길어지며, 지갑의 가시성도 높아진다.
하지만 이 같은 변화는 폐쇄나 금지와는 거리가 멀다. 사용자의 접근을 차단하지 않으며, 다만 어떤 정보가 수집되고, 어떤 항목이 감시·보관되며, 어떤 조건하에 공유되는지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암호화폐 업계가 성장과 규제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시험대에 올랐다.
물론 업계에는 단기적인 부담이 따를 것이다. 법률 자문, 기술 인프라 구축, 직원 교육 등이 초기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부 플랫폼은 조기 적용 지역에서 서비스를 제한하거나 철수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의 *전문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법적 확실성이 높아지면 장기 투자가 유입되고, 이용자는 더 나은 보호를 기대할 수 있다. 이제 사용자들은 자신이 주로 이용하는 플랫폼이 CARF를 준비 중인지, 거래 기록을 얼마나 정밀하게 관리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베테랑 사용자라도 분쟁이나 세무 조사 시 불쾌한 ‘깜깜이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CARF는 암호화폐가 진정한 성숙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구조적 신호다. 주변부에서 핵심으로 이동하는 암호화폐 시장의 다음 국면에서는 *합법성과 신뢰성*이 경쟁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