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개된 ‘제프리 엡스타인 문서’가 암호화폐 업계에도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엡스타인이 비트코인 초기 생태계와 접점을 가졌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일부에서는 “비트코인의 출발부터 오염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소셜미디어에는 엡스타인이 비트코인의 숨은 배후였다는 주장, 탈중앙화라는 이상이 범죄자의 자금으로 훼손됐다는 음모론이 뒤섞여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분노와 혐오가 사실 판단을 대신할 수는 없다. 엡스타인이 비트코인에 접근한 방식은 무엇이었고, 그 자금은 과연 시스템 자체를 흔들 수 있었는가. 자극적인 해석을 걷어내고, 당시의 맥락과 구조를 차분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014년이라는 시점, 그리고 ‘투자자’ 엡스타인
확인된 사실부터 보자. 엡스타인은 2014년 전후, 조이 이토가 관여한 MIT 미디어랩 펀드를 통해 블록스트림(Blockstream)에 간접 투자했고,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의 초기 투자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는 부인하기 어려운 기록이다.
중요한 것은 시점이다. 2014년은 마운트곡스(Mt. Gox) 파산 이후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고, 업계 전반이 존폐의 기로에 섰던 시기다. 지금의 시가총액과 제도권 논의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주류 벤처캐피털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초기 인프라 기업들은 생존 자체가 문제였다.
이 시점에서 엡스타인의 자금은 ‘이상적인 투자’가 아니라 ‘현실적인 연명 수단’에 가까웠다. 최근 일부 해외 매체가 “그가 당시 핵심 기업들을 재정적으로 구했다”고 평가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다.
그러나 이를 비트코인 철학에 대한 공감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 엡스타인의 관심은 기술이 아니라 네트워크였다. 성범죄 전력으로 금융·사교계에서 고립된 그는, 신기술을 매개로 실리콘밸리와 권력 핵심부에 재진입하려 했다. 비트코인은 그에게 탈중앙화 실험이 아니라, 사회적 복귀를 위한 도구였다.

기업에 투자했을 뿐, 프로토콜을 지배하지는 못했다
논쟁의 핵심은 여기서 갈린다. 엡스타인은 비트코인 ‘기업’에 투자했을 뿐, 비트코인 ‘프로토콜’을 소유하거나 통제한 적은 없다.
코인베이스나 블록스트림 같은 기업은 투자자의 영향권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다르다. 발행량, 거래 규칙, 합의 구조는 투자자가 아니라 채굴자와 노드 운영자, 그리고 오픈소스 개발자들의 합의로 결정된다.
엡스타인이 코인베이스 지분을 가졌다고 해서 비트코인의 통화정책을 바꿀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특정 거래를 검열하거나 지갑을 동결할 권한도 없었다. 설령 그의 자금이 없었다면 일부 기업은 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트코인 네트워크 자체가 멈췄을 가능성은 낮다. 기업은 대체될 수 있지만, 분산 네트워크는 그렇게 쉽게 소멸하지 않는다.
그가 사토시 나카모토였다는 주장이나, 블록 사이즈 전쟁을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17년 블록 사이즈 논쟁 당시, 엡스타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자본과 해시파워를 가진 세력들이 규칙 변경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비트코인의 규칙은 자본으로 매수되지 않았다.
불편한 역사, 그러나 시스템은 남았다
초기 비트코인 생태계가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자본과 얽혔다는 점은 불쾌한 사실이다. 이상적인 서사만으로 역사를 정리할 수는 없다. 실리콘밸리의 탐욕, 회색 자본, 범죄자의 욕망이 교차한 지점에 비트코인 기업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근접성이 곧 소유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범죄자가 초기 인터넷 인프라에 투자했다고 해서 인터넷이 그의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엡스타인이 일부 암호화폐 기업에 투자했다고 해서 비트코인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사건은 비트코인의 성격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가장 취약했던 시기에 가장 불순한 자금이 스쳐 갔음에도, 프로토콜은 변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규칙이 바뀌지 않았다. 시스템은 인물과 자본을 흡수한 뒤, 그대로 작동했다.
비트코인의 힘은 여기에 있다. 사람은 타락하지만, 코드와 합의는 그렇지 않다. 자본보다 합의가 앞서고, 인물보다 규칙이 앞선다. 엡스타인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는 지금, 비트코인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다시 묻기보다는, 무엇으로 유지되어 왔는지를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