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이 4월 30일 기준금리를 연 3.75%로 동결하면서도, 에너지 가격 충격이 길어질 경우 추가 긴축에 나설 수 있다는 경고를 함께 내놨다.
잉글랜드은행은 이날 통화정책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위원 9명 가운데 8명이 동결에 찬성했고, 1명은 연 4.00%로 0.25%포인트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시장도 대체로 같은 방향을 예상했다. 로이터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 역시 동결 8명, 인상 1명으로 갈렸다. 잉글랜드은행은 지난해 12월 0.25%포인트 인하한 뒤, 올해 들어 열린 세 차례 회의에서 모두 금리를 그대로 묶어두고 있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다시 높아진 물가 부담이 있다. 영국의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3.3%로, 잉글랜드은행의 물가 목표인 2%를 웃돌고 있다. 특히 자동차 연료를 비롯한 에너지 관련 비용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중앙은행은 통화정책만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 자체를 낮출 수는 없지만, 이런 외부 충격이 임금과 서비스 가격, 기업 가격 결정으로 번지는 이른바 2차 파급 효과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앤드루 베일리 총재가 이번 결정을 두고 경제 여건과 중동 정세의 예측 불확실성을 고려한 합리적 판단이라고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잉글랜드은행은 앞으로의 물가 흐름을 세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제시했다. 에너지 가격이 시장 예상 경로를 따라가는 A 시나리오에서는 지금보다 제한적인 정책 대응이 가능하다고 봤다. 에너지 가격이 높고 변동성도 이어지지만 경제 전반으로의 확산이 비교적 완만한 B 시나리오에서는 연말까지 물가상승률이 최고 3.7%까지 오를 수 있다고 예상했다. 통화정책위원 다수는 이 경우를 가장 가능성 큰 기본 경로로 판단했다. 반면 에너지 가격 고공행진이 장기화하고 다른 부문으로까지 물가 상승 압력이 퍼지는 C 시나리오에서는 내년 초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최고 6.2%에 이를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강한 통화 긴축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영국 금융시장의 시선이 쏠리는 지점은 금리 인하 기대가 사실상 뒤로 밀렸다는 점이다. 중동 전쟁이 본격화하기 전만 해도 영국 물가가 올해 중반 2% 안팎으로 내려오면서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이 거론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에너지 가격 불안이 다시 커지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지난달 19일 통화정책위원회가 물가 상방 위험을 경고하며 만장일치 동결을 결정한 데 이어, 이번에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제시하며 긴축 가능성을 더 분명히 드러냈다. 베일리 총재는 B 시나리오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하면서도, 더 강한 대응이 필요한 C 시나리오 역시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잉글랜드은행은 당장 금리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물가가 다시 들썩이면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낸 셈이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중동 정세와 국제 에너지 가격, 그리고 에너지발 물가 상승이 영국 내 임금과 서비스 물가로 얼마나 번지느냐에 따라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물가가 예상보다 빠르게 오르면 금리 인상 논의가 현실화할 수 있고, 반대로 충격이 제한되면 장기간 동결 기조가 유지될 가능성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