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대 금융지주는 올해 한국 경제가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견조한 성장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성장의 중심이 반도체에 집중돼 있는 만큼, 건설 경기 침체와 비반도체 업종 부진으로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상황은 지표만큼 빠르게 나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함께 제시됐다.
20일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이 공시한 2026년 1분기 보고서를 보면, 이들 금융지주는 모두 올해 한국 경제를 움직일 핵심 변수로 반도체를 꼽았다. KB금융은 반도체 수출 호황과 정부 추가경정예산, 민간 소비 회복세가 성장의 축이 될 것으로 봤다. 특히 1분기 국내총생산이 전 분기보다 1.7% 증가한 점을 들어, 이후 분기 성장률이 높지 않더라도 연간 기준으로는 2.5% 안팎 성장이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신한금융도 인공지능 인프라 투자 확대가 반도체 수요를 끌어올리면서 수출과 설비투자를 받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수출 개선은 대외 건전성을 보여주는 경상수지 흑자 확대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경상수지는 상품과 서비스, 본원소득 등을 종합한 국가 간 거래 성적표인데, 흑자 폭이 커지면 외화 유입 여건이 개선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우리금융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한국은행이 지난 2월 제시한 1천700억달러 전망치를 웃돌 수 있다고 봤다.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라 반도체 수출이 예상보다 더 늘어 상품수지가 개선될 수 있다는 이유다. NH농협금융과 하나금융도 상품수지를 중심으로 흑자 규모가 지난해보다 확대되고, 통관수출 역시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이런 성장의 온기가 산업 전반으로 고르게 퍼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지주들은 반도체 호황의 이면에서 비반도체 제조업과 건설투자 부진이 이어지면서 업종 간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신한금융은 외형상 성장률이 높아 보여도 실제 기업과 가계가 느끼는 체감경기와의 간극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KB금융도 한국 경제의 수출 구조가 일부 품목에 편중돼 있고, 중동 전쟁 장기화와 세계 무역 갈등이 여전히 부담 요인이라고 짚었다. 중동 정세가 상반기 중 다소 진정되더라도 에너지 공급망이 정상화되는 데 시간이 걸리면 성장 폭이 기대보다 제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통화정책과 환율에 대해서는 비교적 신중한 전망이 나왔다. 기준금리 전망을 내놓은 KB금융과 하나금융은 한국은행이 신현송 신임 총재 취임 이후에도 당분간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물가와 환율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금리 조정보다는 관망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는 의미다. 원/달러 환율도 당분간 높은 수준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KB금융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이상에서 지속되면 환율이 단기적으로 1,500원 안팎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고, 하나금융은 2분기 환율이 1,450원에서 1,520원 사이에서 큰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결국 올해 한국 경제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성장의 버팀목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산업 쏠림과 지정학적 불안, 고환율 부담이 함께 이어질 경우 지표 경기와 체감 경기의 간극도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