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업계가 신작 출시 시기를 속속 연기하면서, 업계 전반이 전례 없는 위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개발비 상승과 시장 포화에 대한 우려가 맞물리며, 기존의 개발·출시 전략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9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다수의 주요 게임사들이 2025년 하반기 이후 예정됐던 신작들의 일정 조정을 잇달아 발표했다. 카카오게임즈는 당초 올해 3~4분기 출시 예정이던 게임 4종의 일정을 내년으로 미뤘고, 기대작으로 꼽힌 ‘아키에이지 크로니클’ 역시 2026년 3분기로 출시가 늦춰졌다. 심지어 ‘프로젝트 S’, ‘검술명가 막내아들’ 기반 게임은 아예 출시 시점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 같은 흐름은 중견 게임사들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웹젠은 일본 애니메이션 풍의 게임인 ‘테르비스’의 출시를 내년 이후로 미뤘고, 크래프톤은 ‘어비스 오브 던전(구 다크앤다커 모바일)’과 ‘딩컴 투게더’의 론칭을 작년에서 올해로 연기했다. 펄어비스 역시 오랜 개발 끝에 ‘붉은사막’의 출시를 계속 미루고 있으며, 엔씨소프트의 자회사인 루디우스게임즈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택탄’의 제작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연기와 취소 행렬의 배경에는 현재 게임시장 전반이 겪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이 있다.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일부 인기 게임들이 수년간 장기 서비스 체제로 운영되면서, 새 게임들이 진입할 여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넥슨코리아 박용현 부사장은 지난 6월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PC방 인기 순위 상위권은 여전히 10년 넘은 게임이 차지하고 있고, 모바일 분야조차 신작의 생존이 매우 낮다”고 분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조기에 완성도를 끌어올리지 못한 신작이 주목받기 어려워, 개발 단계에서부터 더 많은 시간과 자원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한편, 업계 일각에서는 제작 여건과 시장 기대 간의 괴리를 언급하며, 게임 자체의 독창성과 완성도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자금과 인프라 측면에서 중국 게임사들과 경쟁이 어려운 국내 개발사들은, 기존 인기 장르의 모방보다는 새로운 기획과 차별화된 재미를 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벤처캐피털 업계 관계자는 “기존의 각본을 답습한 게임이 아무리 착한 수익모델을 내세워도 소비자들은 반응하지 않는다”며 구조적 전환을 촉구했다.
이 같은 흐름은 단기 수익보다는 중장기적인 기획 역량 강화와 기술 내재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국내 게임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의미 있는 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신중 기조’를 계기로 보다 정밀하고 창의적인 개발 전략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