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최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시스템 업데이트’ 행사에서 내놓은 청사진은 금융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들이 선보인 ‘커스텀 스테이블코인(Custom Stablecoins)’과 주식 거래 서비스, 그리고 ‘코인베이스 토크나이즈’는 단순히 암호화폐 거래 지원을 넘어 전통 금융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플랫폼이 스스로 은행이 되고 브랜드가 곧 화폐가 되는 대전환의 서막이라 할 만하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서비스형 스테이블코인(Stablecoin-as-a-Service)’이다. 이제 어떤 기업이든 코인베이스의 인프라를 활용해 자사 브랜드의 디지털 달러를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기업들이 고객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발행해온 포인트나 마일리지는 해당 생태계 안에서만 갇혀 있는 반쪽짜리 자산이었다. 그러나 코인베이스가 규제 준수와 수탁, 발행을 책임지는 이 시스템 아래에서라면 기업의 포인트는 즉각적으로 환금성을 지닌 진짜 ‘돈’으로 변모한다. 스타벅스 포인트가 전 세계 어디서든 결제되고 이자까지 낳는 디지털 화폐가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코인베이스의 야심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주식 거래와 전통 자산의 토큰화 서비스를 결합해 찰스 슈왑이나 로빈후드 같은 기성 금융사들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암호화폐와 주식, 파생상품과 토큰화된 실물 자산을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에서 관리하는 ‘에브리싱 익스체인지(Everything Exchange)’로의 진화다. 이는 기존 금융권이 쌓아 올린 견고한 칸막이를 무너뜨리고 사용자 경험(UX)과 플랫폼 경쟁력만으로 승부하는 새로운 전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금융의 지각변동 속에서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상반기부터 법인의 암호화폐 시장 참여 로드맵을 가동하며 제도권 진입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여전히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명확한 규제 체계는 안갯속에 있으며 암호화폐 이용자 보호법 2단계 입법 논의 역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코인베이스와 손잡고 자사 화폐를 발행하며 유동성을 흡수하는 동안 우리 기업들이 낡은 규제에 묶여 단순 포인트 제도에 머물러 있다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금융은 신뢰의 산업이자 동시에 속도의 산업이다. 기술이 금융의 문법을 바꾸고 플랫폼이 화폐 권력을 넘보는 이 엄중한 시기에 규제의 불확실성은 혁신의 가장 큰 적이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지는 ‘화폐의 브랜드화’와 ‘자산의 토큰화’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도 이를 단순한 투자 대상이 아닌 비즈니스 모델의 근본적 혁신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기술이 전통 금융의 담장을 허무는 지금,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한국 금융의 글로벌 변방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