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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더리움 재단의 '자기 소멸 선언'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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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사라지기 위해 존재한다 — 이더리움 재단 38페이지 강령의 진짜 의미

 [사설] 이더리움 재단의 '자기 소멸 선언'이 의미하는 것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빠른 우편'쯤으로 여겼다. 전자메일을 주고받고, 뉴스를 검색하는 도구. 그러나 인터넷은 결국 금융·언론·유통·정치의 판 자체를 바꿔버렸다. 오늘날 이더리움을 '비트코인 다음으로 시가총액이 큰 코인'으로만 이해하는 시각은, 당시 인터넷을 빠른 우편으로 본 시각과 다르지 않다.

이더리움은 코인이 아니다. 전 세계 누구도 꺼트릴 수 없고, 어떤 국가나 기업도 통제할 수 없는 공개 컴퓨터 인프라다. 구글의 서버는 미국 정부가 압류할 수 있다. 애플은 앱스토어에서 앱을 삭제할 수 있다. 은행은 계좌를 동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더리움 위에 올라간 코드는, 누가 명령해도 멈추지 않는다. 2015년 출시 이후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이 위에 금융 서비스가 올라온다. 계약이 올라온다. 신원 증명이 올라온다. 은행 계좌가 없는 개발도상국 시민도, 정부의 자산 동결을 피해야 하는 활동가도, 중개 수수료 없이 직거래하려는 소상공인도 이 인프라를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다. 특정 기업의 서버가 아닌, 전 세계 수만 대의 컴퓨터가 동시에 가동하는 분산 네트워크 위에서.

이것이 이더리움이 단순한 투기 자산이 아닌 이유다. 그리고 이더리움 재단이 지금 내린 결정이 가볍지 않은 이유다.

지난주, 이더리움 재단은 38페이지 분량의 공식 강령을 발표했다. 'EF 맨데이트(EF Mandate)'라 불리는 이 문서는 PDF와 함께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 영구 기록됐다. 수정도, 삭제도 불가능한 형태로. 공동 창업자 비탈릭 부테린이 직접 X(구 트위터)에 요약을 올리며 공표한 이 강령의 핵심은 한 문장으로 압축된다.

"이더리움 재단이 사라져도 이더리움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자기 소멸을 전제로 한 존재 이유를 공식화한 것이다. 재단은 스스로를 이더리움의 '소유자'가 아닌 '청지기(steward)'로 못 박았다. 그 청지기의 임무는, 자신이 없어도 굴러가는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명문화했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프라 기관의 자세다. 중앙은행이 특정 총재 한 명에게 의존하지 않아야 하듯, 인터넷이 그것을 만든 연구자들이 사라진 뒤에도 작동하듯. 이더리움 재단은 스스로를 그 수준의 공공 인프라 관리자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강령의 또 다른 핵심은 CROPS다. 검열 저항(Censorship-resistance), 오픈소스(Open-source), 프라이버시(Privacy), 보안(Security)의 머리글자다. 재단은 이 네 가지를 앞으로 모든 의사결정의 절대 기준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협상 대상이 아니다. 처리 속도가 느려지더라도, 사용자 편의성이 떨어지더라도, 이 원칙은 타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지금 블록체인 업계에는 두 가지 흐름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더 빠르게, 더 싸게, 더 많은 사람이 쓰게'를 내세우며 사실상의 중앙화를 용인하는 흐름이다.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해 검증자 수를 줄이고, 편의성을 위해 특정 기업의 인프라에 의존하며, 규제 수용을 위해 거래 검열 기능을 탑재한다. 성능 수치는 인상적이지만, 그것이 과연 '탈중앙화 인프라'인가 하는 의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느리더라도, 불편하더라도, 누구도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을 고수하는 흐름이다. 이더리움 재단은 이번 강령을 통해 후자의 편에 확고히 서겠다고 선언했다. 문서는 '지금 유행하는 사용 사례에 맞춰 기능을 계속 추가하는 것'을 다른 블록체인에나 어울리는 논리라고 명시적으로 비판한다. 날 선 표현이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타이밍이 예사롭지 않다. 최근 몇 달간 이더리움 생태계 안팎에서는 재단을 향한 불만이 축적돼 왔다. 개발 방향이 불투명하다, 리더십이 흔들린다, 솔라나를 비롯한 경쟁 체인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동안 이더리움은 제자리를 맴돈다는 비판이었다. 공동 사무총장이 자리를 떠나 현장 개발로 복귀하는 리더십 변화까지 겹쳤다.

이런 압박 속에서 재단이 택한 것은 시장의 요구에 맞춘 방향 전환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칙의 재확인이었다. 그것은 용기 있는 선택이다. 동시에 냉혹한 선택이기도 하다. 단기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은 등을 돌릴 것이다. 재단은 그것을 알면서도 이 길을 택했다.

기술의 역사는 이런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반복적으로 증명해왔다. 인터넷이 30년을 버텨낸 것은 화려한 마케팅 때문이 아니라 개방성과 상호운용성이라는 지루한 원칙 때문이었다. TCP/IP 프로토콜을 설계한 이들은 유행을 쫓지 않았다. 그들이 고집한 원칙이 결국 세상의 표준이 됐다.

비탈릭 부테린은 강령 말미에 이렇게 썼다. "이더리움은 세계가 아니다. 이더리움은 세계 속에 존재하는 특정한 대상이며, 특정한 속성을 지니기 위해 여기 있다."

함축적인 문장이다. 이더리움은 모든 것을 하려 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자신이 해야 할 것만큼은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은 세계 최상위권의 암호화폐 거래 국가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이 지나치게 단기 가격 등락에 집중돼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더리움 재단이 스스로의 소멸을 설계하면서까지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투자자와, 그것을 모른 채 호가창만 보는 투자자 사이의 간극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판단력의 간극으로, 그리고 수익률의 간극으로 나타날 것이다.

기술 인프라에 대한 이해 없이 기술 자산을 보유하는 것은, 회사를 이해하지 못한 채 주식을 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본 기사는 시장 데이터 및 차트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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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7 22:5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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