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암호화폐 시장이 다시 한 번 구조적 전환점에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a16z crypto 리서치(a16z crypto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과거 개인투자자 중심 시장을 넘어 스테이블코인과 실물자산(RWA) 토큰화를 축으로 기관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 카드사, 인터넷 플랫폼, 증권사들은 규제 명확화 이전부터 파일럿과 지분 투자, 결제망 연동, 토큰증권 준비에 나서고 있으며, 향후 시장 개화 시점에는 이미 핵심 파트너 구도가 상당 부분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분석은 2026년 6월 25일 박성모 리서처가 작성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핵심은 한국 시장이 겉으로는 조용해 보여도 내부에서는 제도권 중심의 블록체인 편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과 2021년 사이 한국은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에서 개인투자자 비중이 두드러진 시장이었고, 업비트와 빗썸 상장은 프로젝트 유동성과 인지도 확보의 관문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거래 열기가 다소 식었지만, 그 빈자리를 대형 금융기관과 플랫폼 기업이 메우며 다음 단계 인프라를 준비하는 양상이다.
특히 ‘스테이블코인’은 한국 정책과 산업 양쪽에서 가장 민감한 의제가 됐다. 보고서는 현재 논쟁의 초점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규제 시장을 열 것인지, 그리고 누가 발행 주체가 될 것인지에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은행 주도 모델을 선호하고, 핀테크와 플랫폼 기업은 개방형 경쟁 구조를 원한다. 규제 당국은 혁신 촉진과 통화 주권 사이의 균형을 검토 중이다. 이 같은 긴장감은 달러 스테이블코인 유입에서 비롯된다. 한국 자금 일부가 해외 거래소와 USDC(USDC) 같은 달러 표시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면서 결제, 거래, 송금 활동 일부가 국내 금융 시스템 바깥에서 이뤄지는 현실이 정책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이 지점을 단순한 상품 경쟁이 아닌 ‘방어적 대응’으로 해석했다. 규제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앞으로의 디지털 머니 흐름을 원화, 국내 기관, 한국 규제 틀 안에 묶어두기 위한 수단으로 읽힌다는 것이다. 아직 상당수 사업은 파일럿 단계에 머무르지만, 주요 기관은 제도 정비를 기다리면서도 실제 테스트를 병행하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KB금융그룹 사례가 대표적이다. KB금융 은행 계열사는 올해 초 할리스커피 QR 결제와 베트남 송금을 포함한 블록체인 기반 결제·송금 흐름을 시험했다. 송금은 3분 이내 처리됐고 비용은 기존 SWIFT 대비 87% 낮았다고 전해졌다. 단순한 기술 검증을 넘어 한국 대표 은행이 실사용 금융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점검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하나금융그룹 역시 두나무 투자로 전략적 연결고리를 강화했다. 현재 하나금융은 두나무의 자체 블록체인 네트워크 GIWA 기반 송금 테스트를 추진하는 다기관 스테이블코인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으며, 하나카드는 외국인 방문객 대상 USDC 결제를 시범 운영 중이다.
NH농협은행은 NHN KCP와 함께 스테이블코인 기반 가맹점 정산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실물 상거래와 결제 처리 부문에서 의미 있는 사용처가 될 수 있다. 케이뱅크는 업비트의 전용 제휴 은행이라는 입지를 앞세워 암호화폐 사용자 흐름과 맞닿아 있으며, 현재 리플(XRP) 측과의 협업을 포함해 스테이블코인 지갑과 송금 서비스 도입 가능성을 타진 중인 것으로 소개됐다.
결제 네트워크의 움직임도 빠르다. 신한카드는 솔라나 재단과 협력해 실물 결제용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2800만 회원과 연간 200조원 규모의 거래를 보유하고 있어, 이번 협업은 단순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는 평가다. BC카드는 외국인 방문객이 국내 가맹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2개월 파일럿을 마쳤다. 카드 승인과 정산 계층에 스테이블코인을 연결함으로써 변동성과 실시간 대사 문제를 일부 해소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전통 금융권 밖에서는 다날이 부각됐다. 다날은 320만 이용자와 15만 가맹점을 기반으로 한 페이코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으며, 2025년 코리아블록체인위크에서 원화 연동 코리안 스테이블 코인(KSC)을 선보였다. 서클 얼라이언스 합류도 병행했다. ‘코멘트’ 스테이블코인 경쟁에서 유통망 선점은 발행 기술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다날 사례가 보여준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소비자 플랫폼은 한국 시장의 또 다른 핵심 축이다.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는 검색, 메신저, 쇼핑, 금융을 결합한 생활형 플랫폼으로 이미 높은 빈도의 이용자 접점을 확보하고 있다. a16z crypto 리서치(a16z crypto research)는 이런 플랫폼이 은행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지갑형 인터페이스와 반복 사용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카카오페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해외 확장의 두 번째 성장축으로 언급한 바 있고, 네이버는 네이버파이낸셜과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간 결합을 통해 거래소와 생활 결제를 아우르는 구조를 준비 중인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스테이블코인 못지않게 RWA 토큰화 흐름에도 큰 비중을 뒀다. 한국의 토큰화 자산 시장이 아직은 규제 샌드박스와 파일럿 단계에 머물지만, 기관들의 의지는 예상보다 훨씬 앞서 있다는 판단이다. 미국 시장이 국채와 사모신용 중심으로 RWA를 논의해온 것과 달리, 한국은 부동산, 채권, 금, 탄소배출권, 단기채는 물론 선박금융, 방산 공급망, K팝 로열티와 같은 고유 산업군으로 범위를 넓히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한국토지신탁, HJ중공업과 함께 선박금융 토큰화를 검토 중이며, 한화투자증권은 그룹 방산 공급망 자산 토큰화 계획을 내놨다. 스토리 프로토콜은 서울옥션블루와 손잡고 창작 IP와 K팝 로열티의 온체인 이전을 추진하고 있다.
제도 정비도 병행되고 있다. 2026년 초 국회는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 토큰증권 발행의 법적 길을 보다 명확히 열었다. 실제 시행은 2027년 초로 예정돼 있어 당장 대규모 거래를 기대하긴 어렵지만, 시장은 이미 제도 형성을 전제로 포지셔닝에 들어갔다. 예비 인가를 받은 거래 시스템 플랫폼은 NXT와 KDX이며, 한국거래소도 발행 이후 유동성을 처리하는 보완 시장을 준비 중이다. 현재 선두권에는 신한투자증권이 있다. 2025년 투자계약증권 10건 발행을 마무리했고, NXT 중심으로 50개 이상 기업이 참여하는 연합을 꾸렸다. NH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도 선박 자산과 IP를 포함한 파이프라인을 확대 중이다.
이 같은 흐름은 크립토 네이티브 프로젝트에 분명한 시사점을 던진다. 보고서는 한국의 금융기관이 블록체인 인프라를 자체적으로 모두 구축하기보다, 신뢰할 수 있는 외부 기술 파트너를 선별하는 단계에 있다고 봤다. 실제 사례로는 신한카드와 솔라나(SOL) 재단의 협업, 아발란체 기반 KRW1 호스팅, 레이어제로의 한국금거래소 및 넥스페이스 협업, 카이아의 KB 파일럿 지원 등이 언급됐다. 커스터디와 인프라 영역에서는 파이어블록스가 NH농협은행 토큰화 스택에 포함돼 있고, 비트고는 하나금융과 SK텔레콤을 공동 투자자로 둔 한국 법인을 세웠다. 이는 규제 명확화 전부터 구조적 통합이 선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보고서는 한국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경쟁’보다 ‘지원’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통 금융기관은 자산 구조화와 유통, 컴플라이언스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으며, 외부 프로젝트에 바라는 것은 기존 사업을 대체하는 급진성보다 확장과 연결을 돕는 기술이라는 설명이다. RWA 영역에서도 기회는 뚜렷하다. 첫째는 글로벌 유통이다. 한국 기관이 토큰화한 자산을 해외 유동성과 투자자에게 연결할 수 있는 채널이 아직 부족하다. 둘째는 유동성과 크로스체인 상호운용성이다. 셋째는 기관의 기존 사업을 보완하는 인프라 제공이다.
사용자 접점 측면에서는 플랫폼 기업의 역할이 더 커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네이버는 두나무 인수를 공식화하며 네이버페이 3400만 이용자와 업비트 거래 인프라를 결합할 가능성을 열었다. 두나무는 OP 스택 기반 L2인 GIWA를 구축했고, 네이버 역시 자체 지갑 인프라를 개발해온 만큼 거래와 결제를 하나의 온체인 흐름으로 묶을 기반이 있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는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 카카오톡을 아우르는 ‘슈퍼월렛’ 구상을 통해 법정화폐와 스테이블코인을 함께 담는 통합 인터페이스를 준비할 수 있다. 토스 역시 24개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상표를 출원하고 블록체인 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등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은행과 증권사가 발행과 자산을 담당한다면, 실제 대중 채택의 관문은 이런 플랫폼이 쥘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한국 시장의 질문은 더 이상 제도권이 블록체인에 들어올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남은 쟁점은 어떤 체인과 지갑, 커스터디, 결제 인프라, 토큰화 프로토콜이 그 구조의 일부가 되느냐다. a16z crypto 리서치(a16z crypto research)는 한국이 깊은 개인투자자 참여 경험, 정교한 금융기관, 디지털 자산 친화적 이용자층을 동시에 갖춘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스테이블코인’과 RWA를 둘러싼 이 재편 국면에서 지금 관계를 쌓고 실사용 사례를 만든 프로젝트가 다음 한국 블록체인 인프라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