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육부 장관이 인공지능을 “A1”로 지칭하며 사회 전반에 놀림거리를 만든 지 불과 2주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K-12 교육 현장에 AI를 촉진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지시를 통해 교육부와 국가과학재단은 AI 관련 연구와 교부금에 집중적인 재정 지원을 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미래지향적인 조치로 비칠 수 있지만, 그 이면에는 공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우려가 깔려 있다.
AI 기술이 교육 분야에서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맞춤형 학습,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 데이터 기반 교육 분석은 확실히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미국 공교육은 교사, 시설, 인프라 전반에 걸쳐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사람과 자원이 절실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공교육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민영화와 규제완화를 우선시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I 중심의 교육 개혁이 거론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눈가림’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단순히 기술 도입 여부가 아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 방치된 학교에 AI 기술을 도입한다고 해도, 난방이 끊기고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건물에서는 아무런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다. 수십 명의 학생을 혼자 담당하는 교사가 AI 교육 도구를 익히고 수업에 접목시키는 데 쓸 시간조차 없다면, 기술 혁신은 오히려 또 다른 부담이다. 지금 필요한 건 알고리즘이 아니라, 교사의 수와 질, 안정적인 교육 제도, 학생의 삶을 뒷받침할 제도적 보완이다.
AI 기술의 적용은 오히려 교육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 최신 기기, 고속 인터넷, 숙련된 인력이 뒷받침되는 ‘부유한’ 학군에서는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저소득층 지역은 이러한 조건을 갖추기 어렵다. 결국 AI는 공교육을 강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디지털 격차를 확대시키는 ‘트로이 목마’가 될 수 있다.
또한 AI 응용이 의미하는 바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교육 부문에서의 AI 확대는 감시 강화를 포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표준화된 시험, 데이터 수집, 강제적인 시스템 통합이 많아지고, 결과적으로 학생의 개별성이 희생될 수 있다. 기업과 기관들이 학습 데이터를 수집하고 권한을 행사하게 되면서, 교육 현장은 민간 기술 기업의 실험장이 되거나, 알고리즘 기준에 따른 의사결정으로 옮겨갈 위험성마저 있다.
현장 이야기는 또 다르다. 교사들은 AI 기술이 아니라, 적정한 학급 규모와 충분한 업무 여건, 교육의 자율성을 요구하고 있다. 학생들은 최신 기술 도입이 아닌, 안전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학교 환경을 바라고 있으며, 학부모들은 자녀가 인간적인 돌봄을 받고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근본적인 요구는 무시된 채, 표면적인 혁신만이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진정한 교육 개혁은 기술의 도입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투자에서 출발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교육 개혁에 진심이었다면 교사 임금 인상을 추진하고, 공립학교 예산을 확대하며, 고등교육 비용을 줄이고, 학생 정신건강 지원을 늘리는 정책이 먼저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AI는 교육을 위한 도구일 뿐, 해결책 그 자체가 아니다. 공교육을 살리는 해법은 기술이 아닌, 정치적 의지와 공공투자에 달려 있다. 지금처럼 교육의 본질적 문제를 외면한 채 기술만을 강조하는 상태에서는 어떤 형태의 인공지능도 미국 학교를 구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건 가상이 아니라, 분명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