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이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기업들의 기술 지출은 여전히 불확실성 속에서 신중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AI를 비롯한 신기술 도입 기대와 달리 시장 환경은 복합적인 요소로 인해 투자의 흐름을 가로막고 있다. 기술을 둘러싼 기대와 현실의 간극이 커지면서, 기술 담당 임원들의 과감한 투자 판단은 점점 더 어렵게 됐다.
ETR(Enterprise Technology Research)의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25년 IT 지출 증가율 기대치는 연초 5.3%에서 봄에는 3.4%로 낮아졌다가, 7월 조사에선 3.6%로 소폭 반등했으나 여전히 연초 대비 크게 둔화된 수치다. 특히 글로벌 대기업(G2000)의 예상 지출 증가율은 2.9%로, 중소기업들의 4.5%와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중소기업이 정치, 통상 정책 변화에 더 취약하다는 점이다. 이는 즉각적인 악영향으로 직결될 수 있다.
기술 지출 패턴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2년물 국채 수익률 간 상관관계를 보면, 이자율이 급등한 2022년 이후부터 IT 투자 의지는 빠르게 식었다. 기술 부문은 팬데믹 이후 낙관론에서 벗어나 현실에 직면했고, 현재는 3% 안팎의 지출 증가율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사이버 보안 위협, 지정학적 리스크 및 정책 불확실성 등이 기업들을 보수적으로 만들고 있다.
ETR의 또 다른 조사에서는 기업들이 ‘운영 회복력’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상당수 조직은 이 요소를 핵심 전략 과제로 간주하고 있다. 특히 사이버 공격의 빈도와 피해 심각도는 기술 의사결정자(ITDM)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회복 시간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실제 공격을 경험한 기업 중 단 2%만이 수시간 내 복구 가능했으며, 대부분은 수일에 걸친 다운타임을 겪었다. 이런 현실은 기업들에게 엄청난 생산성 손실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기술 예산을 줄이고 있는 건 아니다. 실제로 IT 지출을 줄이겠다고 응답한 기업 비율은 20%로, 2년 전 24%보다 낮아졌다. 다만 감소한 쪽에서는 인력 감축과 신규 프로젝트 연기를 주요 전략으로 택했다. 반면, IT 예산 확대를 추진하는 기업은 ‘신규 프로젝트 가속’과 ‘클라우드 리소스 확대’에 집중하고 있지만, 후자의 전략은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클라우드 기술의 지출은 여전히 다른 분야를 압도하고 있다. 연간 8.1%의 성장률로, 하드웨어, 아웃소싱, SaaS를 모두 추월하고 있다. 특히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주요 하이퍼스케일러들과 알리바바 매출을 합산하면 올해 클라우드 매출은 2,500억 달러(약 360조 원)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고성장은 인공지능과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 생태계의 가속적 확산 덕분이다.
한편 기업들의 AI 투자 성과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재 대부분의 AI 프로젝트는 실험적 성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실질적인 생산성 향상이나 수익 창출로 이어지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다만 생산성 보조 및 분석 정교화는 AI의 대표적인 활용처로 자리 잡고 있다. 다수 기업은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이나 ‘인력 감축’ 등보다도 현실적이고 저위험인 영역부터 AI를 적용하고 있다.
AI는 장기적으로 경제에 대규모 생산성 향상을 가져올 잠재력을 갖고 있다. 현재 글로벌 경제 규모가 100조 달러(약 14,400조 원)에 이르는 가운데, 10%의 생산성만 증가해도 연간 10조 달러(약 1,440조 원)가 새롭게 창출될 수 있다. 이에 비하면 현재 연간 AI 투자가 5,000억 달러(약 720조 원)에 이르는 수준은 과도하지 않다. 오히려 보수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이 변화를 수용하느냐는 점이다. 선도 기업이 아니더라도, 현명한 추종자는 늘 승산이 있다. 페이스북, 델, 구글 모두 업계 1세대가 아니었다. 기업은 AI 도입에 있어 가치 중심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작지만 확실한 성공 사례를 통해 조직의 마인드를 전환시켜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조직 전반에서 자율적 가치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
기술 투자의 방향성을 설정하는 경영진의 역할은 이런 조직 내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분산된 조직 내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명확한 지향점과 데이터 전략, 그리고 필요한 자원을 갖춰주는 것이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경제가 순항할 때도 항상 위험 요소는 존재해왔다. 오늘의 불확실성도 언젠가는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핵심은 브레이크만 밟는 것이 아니라 속도 조절을 통해 변동성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