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멤풀에 쌓이는 거래가 ‘우선순위 경쟁’을 부른다
이더리움(ETH) 네트워크에서 사용자가 전송한 트랜잭션은 곧바로 블록에 기록되지 않고, 검증자(밸리데이터)가 채택하기 전까지 공개 대기열인 ‘멤풀(mempool)’에 머무는 시간이 생긴다. 문제는 이 구간이 누구에게나 관찰 가능하다는 데 있다. 대기 중인 거래의 내용과 예상 체결 경로가 노출되면, 외부 참여자들이 더 높은 수수료나 정교한 전략으로 거래 순서를 선점하려는 ‘우선순위 경쟁’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최대추출가능가치(MEV)’가 커진다.
MEV는 블록 안의 트랜잭션을 ‘재정렬·포함·제외’하는 방식으로 추가 이익을 만들어내는 구조적 수익이다. 디파이(DeFi)와 탈중앙거래소(DEX) 거래량이 늘면서 이런 기회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국제 시장에선 DEX 연간 거래 규모가 2조 달러 수준으로 커질 것이란 전망이 확산되며, MEV를 사실상 블록체인 거래 비용의 ‘그림자 시장’으로 보는 시각도 강해졌다.
MEV는 공급망 산업으로 진화…서처·빌더·릴레이어·검증자가 맞물린다
MEV는 개인 봇의 단발성 수익을 넘어, 역할이 세분화된 ‘공급망’으로 굳어졌다. 출발점은 ‘서처(searcher)’다. 서처는 디파이 프로토콜과 공개 트랜잭션 흐름을 실시간으로 스캔해 차익거래, 청산, 가격 불일치 같은 수익 기회를 계산한다. 이후 특정 사용자의 거래 앞뒤 또는 중간에 자신들의 거래를 배치한 ‘번들(bundle)’을 만들어 블록 빌더(builder)에게 전달한다.
빌더는 퍼블릭 멤풀에서 수집한 거래, 프라이빗 주문 흐름, 서처 번들을 조합해 가장 높은 가치를 내는 블록을 설계한다. 이 과정에서 릴레이어(relayer)가 경매 형태의 입찰 정보를 중계하고, 슬롯마다 블록 제안 권한을 얻은 검증자는 통상 자신에게 가장 큰 보상을 제시하는 블록을 선택해 체인에 게시한다. 결과적으로 MEV는 ‘누가 더 빨리 보느냐’의 싸움에서 ‘누가 더 좋은 블록을 납품하느냐’의 경쟁으로 진화했고, 거래 순서 결정과 수수료 배분이 시장처럼 가격을 갖게 됐다.
특히 이더리움에서 MEV-Boost 채택률이 89% 수준까지 올라간 것으로 알려지면서, 빌더-릴레이 기반 경매가 사실상 표준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럼에도 전체 거래의 약 70%가 여전히 공개 멤풀을 통해 유입되는 만큼, 사용자는 악성 MEV에 노출될 여지가 크다.
샌드위치 공격은 사용자 체결가를 갉아먹는다
악성 MEV의 대표 사례가 ‘샌드위치(sandwich)’ 공격이다. 사용자가 DEX에서 토큰을 스왑하려는 트랜잭션을 멤풀에 올리면, 이를 탐지한 봇이 사용자 거래를 앞뒤로 감싸며(프런트런·백런) 가격을 불리하게 움직인 뒤 차익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사용자는 더 나쁜 가격으로 체결되고, 그 손실이 공격자의 이익으로 이전되는 구조다.
가령 사용자가 WETH를 특정 토큰으로 바꾸는 거래가 제출되면, 서처는 라우팅 경로와 풀 유동성을 계산해 공략 지점을 찾는다. 봇은 먼저 동일 방향으로 선매수해 가격을 끌어올리고, 사용자의 거래가 뒤따르도록 만들어 슬리피지(가격 미끄러짐)를 극대화한다. 이후 반대 거래로 포지션을 되돌리며 스프레드 이익을 확정한다. 저유동성 풀에서 대형 스왑이 발생할수록 피해가 커지는데, 시장에선 5,000만 달러 규모의 USDT가 3만6,000달러 상당의 에이브(AAVE)로 체결되는 식의 극단적 사례가 거론되며, MEV가 사실상 ‘체결 리스크’를 재분배한다는 경고가 나온다.
실제 피해 사례도 잇따른다. 해외 보도에 따르면 이더리움 재단이 샌드위치 공격으로 9,101달러 손실을 본 사례가 공개되며, ‘개인 사용자만 당한다’는 인식도 흔들렸다. 같은 맥락에서 유동성과 거래가 빠르게 이동하는 멀티체인 환경에서 MEV가 이더리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부각된다.
PBS 체제의 딜레마…효율과 집중화 리스크가 동시에 커진다
이더리움은 ‘제안자-빌더 분리(PBS, Proposer-Builder Separation)’ 모델을 통해 블록 구성 역할과 블록 제안 권한을 분리했다. 약 12초의 블록 타임 동안 빌더는 트랜잭션 순서를 최적화해 블록 가치를 높이고, 매 슬롯마다 경매를 통해 그 가치 일부를 검증자에게 제시한다. 효율성 측면에선 블록 생산이 고도화됐지만, 부작용도 커졌다.
핵심은 빌더 시장의 ‘집중화’다. 특정 빌더가 반복적으로 경매에서 승리하면 주문 흐름이 더 몰리고, 다시 경쟁 우위가 강화되는 ‘플라이휠’이 작동한다. 자료 기준으로 타이탄 빌더가 47.6%, 빌더넷이 26.0%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상위 사업자 쏠림이 관측되며, 거래 순서 결정권이 소수에게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는 단순한 시장구조 문제가 아니라, 검열 가능성이나 특정 전략의 광범위한 확산처럼 네트워크 신뢰와 직결되는 사안으로 번진다.
MEV는 멀티체인으로 확산…솔라나·BSC도 ‘수익 전쟁’
최근 국제 분석 플랫폼들은 MEV가 이더리움 중심에서 멀티체인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고 본다. 솔라나(SOL)는 2024년 4월 MEV 수익이 이더리움을 넘어선 시점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고, BNB체인(BSC)은 최근 30일 기준 MEV 수익이 1억3,300만 달러에 달했다는 데이터도 언급된다. 2024년 MEV 관련 스마트 계약 배포량이 320% 증가했다는 지표는, MEV가 단순한 거래 트릭이 아니라 인프라·도구·전략이 결합된 기술 경쟁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시장 전망치도 가파르다. 일부 해외 매체는 MEV 시장이 2023년 13억 달러에서 2025년 400억~1,00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될 수 있다고 추정한다. 디파이 성장, 크로스체인 유동성 확대, 레이어2 보급, 기관 참여 증가가 동시에 작용하는 가운데, MEV가 ‘수수료 외 비용’으로 사용자 경험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경계도 커졌다.
해법은 ‘멤풀 우회’와 ‘보호형 인프라’…레이어2도 실험 중
업계가 주목하는 완화책은 크게 두 갈래다. 첫째는 프라이빗 전송 등으로 공개 멤풀 노출을 줄이는 ‘멤풀 우회’ 전략이다. 거래 내용이 공개 대기열에 오래 머무르지 않도록 경로를 바꾸면, 샌드위치 공격 같은 악성 MEV의 전제 조건 자체가 약해진다. 둘째는 MEV 저항 기술의 고도화다. 머신러닝 기반 예측, TWAP(시간가중평균가격) 오라클 등 방어 기제가 확산되며, 시장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레이어2에서도 변화가 진행 중이다. 아비트럼(ARB)과 옵티미즘(OP) 같은 네트워크에선 MEV가 주로 청산 이벤트 중심으로 발생해 구조가 다르며, Timeboost 같은 릴레이 메커니즘이 도입되면서 질서 개선을 노리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다만 레이어2의 MEV가 아직 ‘안정적 수익원’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결국 MEV는 이더리움(ETH) 생태계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이자, 디파이 거래 비용과 공정성 논쟁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퍼블릭 멤풀 기반 구조가 유지되는 한 MEV는 사라지기 어렵고, 프라이빗 주문 흐름 확대와 빌더 시장의 집중화 완화가 향후 거래 질서를 좌우할 변수로 꼽힌다.
🔎 시장 해석
- 퍼블릭 멤풀(공개 대기열) 구조가 거래 정보를 선공개하면서 MEV(채굴자/검증자 추출 가치) 경쟁이 상시화되고 있음
- 그 결과 샌드위치 공격 등 ‘거래 순서 조작’이 늘어나 사용자 체감 체결가(슬리피지)와 거래 신뢰도가 악화되는 흐름
- PBS(제안자-빌더 분리) 등 빌더 중심 구조가 확산될수록, 거래 질서가 “더 효율적”일 수는 있지만 “더 중앙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커짐
💡 전략 포인트
- 디파이에서 대형 스왑/유동성 이동 시: 슬리피지 허용치 점검 + 거래를 분할 실행해 샌드위치 노출을 낮추는 것이 유리
- 프라이빗 거래(프라이빗 멤풀/릴레이)·MEV 보호 옵션을 제공하는 지갑/라우터 사용 여부를 확인(가능한 경우)
- 멀티체인 확산 국면에서는 체인별 MEV 환경(블록타임, 유동성, 빌더/릴레이 생태계)이 달라, 동일 전략이 동일 성과를 보장하지 않음
📘 용어정리
- 멤풀(Mempool): 블록에 포함되기 전, 네트워크에 ‘대기 중’인 트랜잭션(거래) 목록
- MEV: 거래 순서/포함 여부를 조정해 얻는 추가 이익(아비트라지, 청산, 샌드위치 등으로 발생)
- 샌드위치 공격: 사용자의 스왑 앞뒤로 봇이 매수·매도를 끼워 넣어 사용자의 체결가를 불리하게 만드는 방식
- PBS(Proposer-Builder Separation): 블록 제안자(검증자)와 블록 구성자(빌더)를 분리해 블록 제작을 전문화하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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