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뭉쳤다…'한국형 소버린 AI' 공동 개발 본격화

국가 연구개발 기관들이 모여 공공부문 중심의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 개발을 본격화하며, '소버린 AI' 구축을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히 각 기관의 고유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외부 기술에 의존하지 않는 국가 자립형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13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국가 공공분야 소버린 AI 토론회’에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23개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참가했다. 이들은 각기 보유한 연구 성과와 인프라를 활용해 공공영역에 특화된 인공지능 모델을 구축하는 방향을 공유하고, 실질적인 연구개발 협업 방안을 논의했다. ‘소버린 AI’는 데이터를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내에서 자율적으로 관리·운영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 체계를 의미한다.

이 자리에서 ETRI는 언어·시각 등 다양한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고도화된 '멀티모달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연구자처럼 사고하고 연구 업무를 보조하는 인공지능 시스템, 즉 'AI 과학자'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권오욱 ETRI 지능정보연구본부장은 미국 에너지부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등의 AI 기반 연구 시스템 사례를 언급하며, 국내에서도 출연연 간 데이터 결합과 협업 기반의 인공지능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기관별로 분야별 특화 AI의 가능성도 제시됐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바이오 및 의료 데이터 기반의 '소버린 바이오 AI' 개발을 추진 중이며, 한국한의학연구원은 환자의 데이터 보호와 잘못된 정보 생성을 방지하기 위한 프라이빗 생성형 AI를 제안했다. 이외에도 독성 분야, 우주 과학, 생명공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출연연이 자체적으로 축적한 데이터를 인공지능 학습에 활용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다만 출연연이 개별적으로 AI 플랫폼을 개발하는 데는 한계와 비효율성이 존재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측은 슈퍼컴퓨터 및 데이터 인프라를 공동 활용할 수 있다며, AI 개발의 전제 조건으로 데이터 공유를 위한 법적·제도적 거버넌스 마련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현재는 기관별 보안 정책과 저작권 규정이 각기 달라, 협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결국 개별 기관이 자체 인프라만으로 AI 특화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각 출연연이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듈형 AI 에이전트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각자 전문 분야에 맞춘 특화형 모델을 개발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향후 한국형 소버린 AI 체계 구축의 토대가 될 수 있으며, 미래 과학기술 자립성과 연구 효율성 제고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기관 간 데이터 공동 활용을 위한 제도 정비와 범정부 차원의 협업 체계 구축이 선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