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 관련 법규를 실질적으로 시행하는 국가가 되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과도한 규제와 준비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규제 중심의 한국과 달리 자율 규제를 택한 일본으로 국내 AI 스타트업이 관심을 돌리는 양상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오는 2025년 1월 22일부터 시행되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은 AI 관련 입법을 추진해 온 유럽연합(EU)을 제치고 실제 적용 단계에 들어가는 첫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EU는 이미 기본법을 제정했지만, 내년 8월부터 일부 고위험 인공지능 적용에만 제한적으로 규제가 시작될 예정이다. 게다가 최근 EU 집행위원회가 규제 시기를 2027년 말로 늦추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적인 규제 방향이 전반적으로 완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국 내부에서는 법 시행 시점이 임박한 반면 현장의 준비 상황은 미흡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AI 스타트업의 98%는 법 시행에 대비한 실질적인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특히 과반에 가까운 응답 기업들이 법적인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거나, 법은 알고 있지만 준비가 부족하다고 답해 법 적용에 대한 혼란이 감지된다.
AI 콘텐츠 기업들은 생성물 표시 의무 등 구체적인 조항들이 명확하지 않다며 우려를 내놓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AI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에는 'AI 생성물'이라는 표시를 의무화하는 방침이지만, 이는 창작의도를 무시하고 소비자 인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이들은 수많은 인력이 기여한 전문 콘텐츠도 결국 기계가 만든 결과물로 낙인찍히는 상황을 우려하며 법 적용의 형평성을 문제 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은 AI 정책 전반에 있어 자율 규제를 기본으로 하는 '소프트 거버넌스(비강제적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일본은 2023년 9월부터 'AI 적정성 확보 가이드라인' 초안을 마련해 기술 투명성과 디지털 윤리, 정보 교육 강화 등을 유도하지만 별도의 강제 조항은 두지 않는다. 이 같은 환경이 국내 기업들로 하여금 일본 시장을 새로운 기회로 여기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언어모델 기반 솔루션을 개발하는 업체들이 일본 현지 법인 설립을 추진하거나 현지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는 AI법 시행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의견 수렴 부족과 준비 기간 부족을 지적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향후에도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한 채 규제가 일방적으로 진행된다면, 기업들의 해외 이탈 가속화로 국내 AI 생태계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 같은 흐름은 법령 시행 이후 실제 운영 과정에서 보완 입법 요구나 시행령 개정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