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35년까지 1천조원 규모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투자를 끌어들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으면서, 국내 인공지능 산업의 승부처가 반도체와 모델 개발을 넘어 실제 연산 인프라 구축으로 옮겨가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을 국산화하더라도 이를 돌리는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가 해외 의존 구조에 머물면 산업의 핵심 부가가치가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판단이 정책의 출발점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6월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2029년까지 550조원을 들여 8.4기가와트 규모의 인공지능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2035년까지 10기가와트를 추가로 조성해 총 1천조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그동안 국산 신경망처리장치와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힘을 실어왔지만, 정작 인공지능 서비스가 실제로 작동하는 기반 시설은 상대적으로 취약했다고 보고 있다. 서버, 네트워크, 냉각장치, 전력 설비가 함께 맞물려야 하는 데이터센터는 단순한 건물 투자라기보다 산업 생태계 전체를 묶는 기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구상의 핵심은 이른바 ‘소버린 인공지능’ 완성에 있다. 소버린 인공지능은 반도체, 모델, 데이터, 연산 인프라를 자국 중심으로 확보해 기술 주도권과 경제적 이익을 함께 지키겠다는 개념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지역별 클러스터 조성, 초대형 테스트랩 구축, 전문인력 양성, 세액공제 확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얼라이언스를 통한 기업 협력 강화 등을 함께 추진할 방침이다. 다시 말해 데이터센터를 많이 짓는 데 그치지 않고, 관련 장비와 운영 기술까지 국내 기업이 맡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다만 계획의 성패는 비수도권 분산 전략이 실제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방은 수도권보다 부지와 전력 확보에 유리하지만, 실제 정보통신기술 수요는 여전히 수도권에 몰려 있다. 특히 응답 속도가 중요한 인공지능 추론 서비스는 이용자 가까이에 설비가 있어야 해 수도권 인접성이 중요하다. 여기에 안정적인 전력 조달 문제도 남아 있다. 내년 3월 시행될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특별법에는 비수도권 전력계통영향평가 면제와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 특례가 담겼지만, 액화천연가스와 원자력 기반 전력 조달 방안은 빠져 있어 대규모 전력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는 과제가 여전하다.
민간도 같은 지점을 가장 중요한 투자 조건으로 보고 있다.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은 같은 날 국민보고회에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약 1천조원, 반도체 공급 확장 프로젝트에 약 1천1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수요와 전력, 부지, 용수 같은 기본 여건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으로도 인공지능 인프라 경쟁은 이미 본격화했다. 노무라증권은 전 세계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투자가 2025년 약 723조원에서 2030년 약 5천241조원으로 커질 것으로 봤고, 골드만삭스는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메타 등 초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2025∼2030회계연도 자본지출 합계가 8천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흐름은 한국도 인공지능 주권을 확보하려면 단순한 선언을 넘어 전력·용수·수요를 함께 설계하는 종합 지원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