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제도 정비가 늦어지는 상황에서 디지털화폐 기반 예금토큰의 상용화 준비를 본격화하고 있다. 민간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 논의와는 별개로,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디지털 지급결제 인프라를 먼저 구체화하겠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1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 디지털화폐실은 예금토큰 실거래 사업인 ‘프로젝트 한강’ 2단계 테스트와 연계해 외부 전문기관 컨설팅 용역을 발주했다. 배정된 예산은 17억원이다. 이번 용역의 핵심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시스템을 한층 고도화하고, 예금토큰을 실제 서비스 단계로 옮기기 위해 필요한 제도·기술 요건을 종합적으로 점검하는 데 있다. 한은은 프로젝트 한강의 목표와 방향을 외부 시각에서 검증받고, 단계별 추진 로드맵도 마련할 계획이다.
검토 대상은 단순한 기술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 한은은 시중은행과 가맹점 등 각 참여 주체가 어떤 유인을 가져야 제도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는지 살펴보고, 시스템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일 운영 체계, 예상 가능한 위험 관리 방안도 함께 따져볼 예정이다. 예금토큰을 둘러싼 법적 쟁점도 검토해 관련 규정집을 만들고, 해외 사례를 참고해 제도 설계의 기준도 세우려 한다. 이용자들이 새로운 결제 수단을 낯설지 않게 받아들이도록 브랜드 전략과 소통 방식까지 준비하는 점은, 한은이 이를 실험을 넘어 실제 도입 가능한 체계로 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프로젝트 한강은 이미 1단계 시험을 마쳤다. 당시 은행 7곳이 참여해 예금토큰의 발행·유통·폐기 과정을 점검했고, 일반인 8만1천명이 실거래 테스트에 참여해 모두 11만5천건의 거래가 이뤄졌다. 최근 본격화한 2단계 테스트에는 은행 9곳이 참여하며, 예금토큰이 부족할 때 보유 예금을 토큰으로 자동 전환하는 기능이 새로 추가된다. 여기에 정부가 국고로 지급하는 보조금이나 쿠폰을 예금토큰 형태로 수급자에게 전달하는 실험도 포함된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고금 집행 실험은 2026년 상반기 착수 준비 중이고,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실거래 실험은 하반기에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움직임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아직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조항을 담은 가상자산 2단계 입법, 이른바 ‘디지털자산기본법’은 2026년 상반기 국회 논의가 무산됐고, 연내 처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한국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의 ‘프로젝트 아고라’처럼 국가 간 지급결제 개선을 겨냥한 국제 논의에도 발을 맞추며 예금토큰 체계를 선제적으로 다듬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민간 스테이블코인 제도 논의와 별도로, 중앙은행과 은행권이 참여하는 공적 디지털화폐 인프라 구축이 먼저 가시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