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중국, 그리고 아세안 10개국이 중동 정세 불안으로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공급망 안정과 에너지 안보를 위한 역내 공조를 강화하기로 뜻을 모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제29차 아세안+3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회원국들은 최근 중동 사태가 아시아 지역 경제에 더 큰 하방 위험을 주고 있다는 데 공감했다. 이들은 특히 에너지 가격 상승, 글로벌 금융여건 긴축, 자본 흐름의 변동성 확대를 핵심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각국은 자국의 경제 상황에 맞는 정책 대응을 통해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고, 개방적이며 규칙에 기반한 다자무역체제를 계속 지지하기로 했다.
공동 성명에는 금융시장 불안에 대한 경계감도 담겼다. 회원국들은 과도한 시장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 글로벌 유동성 변화가 새로운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고 보고 이를 면밀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외환시장이나 금리 문제만이 아니라, 대외 충격이 커질 때 신흥국을 중심으로 자금 유출입이 급격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대응이다. 최근처럼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질수록 에너지 수입 부담이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물가와 환율, 성장률이 동시에 흔들릴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회의에서는 역내 금융안전망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체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회원국들은 2천400억달러 규모인 이 기금의 재원 조달 방식을 납입 자본 방식(PIC)으로 바꾸는 구조 전환 로드맵을 승인했다. PIC는 위기 때마다 자금을 모으는 방식이 아니라, 평소 회원국들이 자본금을 미리 납입해 두는 구조다. 위기 대응 속도와 신뢰도를 높이려는 취지다. 회원국들은 새 법인 설립에 필요한 핵심 원칙 4개 가운데 3개에 합의했고, 남은 거버넌스 원칙도 조속히 정리하기로 했다. 또 이 납입 자본금을 평상시 외환보유액으로 인정받는 방안과 관련해 국제통화기금(IMF) 실무진과의 논의도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는 중동 사태로 역내 안전망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며 PIC 전환이 금융안전망의 신뢰성, 가용성, 대응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회의에서는 역내 자본시장 협력 범위도 넓혔다. 기존 아시아 채권시장 발전 이니셔티브(ABMI)를 주식과 파생상품까지 포괄하는 아시아 채권·금융시장 발전 이니셔티브(ABFMI)로 확대·개편하기로 했고, 중앙은행 고위급 대담을 처음 열어 국경 간 결제 연결성 강화 방안도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는 한·일·중과 아세안 10개국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를 비롯해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 국제통화기금 부총재, 아세안+3 거시경제조사기구(AMRO) 소장 등이 참석했다. 내년 아세안+3 회의는 한국과 싱가포르가 함께 맡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 같은 흐름은 글로벌 불확실성이 이어질수록 아시아 국가들이 공급망, 에너지, 금융안전망을 하나의 묶음으로 보고 협력 수위를 더 높이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