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개발연구원은 국제유가 고공행진이 길어질 경우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기존 전망보다 최대 1.6%포인트 더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단순히 주유소 가격에만 반영되는 데 그치지 않고 운송비와 생산비를 거쳐 소비 전반의 물가를 밀어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마창석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 연구위원이 11일 발표한 ‘최근 국제유가 상승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운송 불확실성에 따른 유가 상승은 시나리오에 따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0~1.6%포인트 높일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지난 2월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가 2.1%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유가가 이어질 경우 물가가 3%대 중후반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만 이번 분석에는 석유 최고가격제나 유류세 인하 같은 정부 대응 효과는 반영되지 않았다.
시나리오별로 보면, 기준 시나리오에서는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가 올해 2분기 배럴당 100달러를 기록한 뒤 3분기 90달러, 4분기 87달러로 점차 내려가는 것으로 가정했다. 이 경우 유가 상승이 올해 소비자물가를 1.2%포인트, 내년에는 0.9%포인트 끌어올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올해 2~4분기 국제유가가 4월 평균 수준인 105달러 안팎에서 계속 유지되는 고유가 장기화 시나리오에서는 올해 물가 상승 기여도가 1.6%포인트, 내년에도 1.8%포인트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유가 부담이 해를 넘겨 계속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개발연구원은 특히 이번 유가 상승이 단순한 수급 변화보다 중동 지역 긴장과 같은 운송 불확실성에서 비롯될 때 물가 파급력이 더 커진다고 봤다. 정유업체들이 향후 공급 차질에 대비해 석유 제품을 더 비축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 같은 양의 수요와 공급 조건에서도 가격이 더 크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석유류 가격뿐 아니라 공업제품과 서비스 같은 비석유류 품목에도 비용 압력이 번진다. 실제로 통상적인 두바이유 상승은 근원물가(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기조적인 물가 흐름)에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운송 불확실성에 따른 두바이유 10%포인트 상승은 근원물가 상승률을 약 0.10%포인트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국제유가가 비교적 빠르게 안정되는 시나리오에서는 물가 부담도 내년부터 상당폭 완화될 것으로 전망됐다. 이 경우 국제유가는 올해 2분기 95달러에서 3분기 85달러, 4분기 80달러로 낮아지는 것으로 가정됐다. 마 연구위원은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 같은 정책 대응이 국제유가 상승의 소비자물가 파급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며, 국제유가 상승이 장기화하고 기대인플레이션(앞으로 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심리)이 흔들릴 가능성에 대비해 물가 안정 정책을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13일 수정 경제전망을 발표할 예정인데, 이 같은 흐름은 향후 정부의 물가 대응 수위와 성장 전망 조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