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사가 5월 20일 성과급 갈등을 봉합하고 파업을 피하면서, 올해 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경기 회복 흐름도 일단 큰 고비를 넘겼다. 반도체 수요가 강한 상황에서 생산 차질까지 겹쳤다면 성장률이 크게 흔들릴 수 있었던 만큼, 이번 합의는 개별 기업의 노사 문제를 넘어 거시경제 불확실성을 줄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전 분기보다 1.7%를 기록해 2020년 3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고, 그 중심에는 반도체 산업이 있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9%에서 2.5%로 올리면서 반도체 기여분이 0.3%포인트를 넘는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도 삼성전자 노조가 애초 예고한 대로 18일간 총파업을 벌일 경우 올해 성장률이 최대 0.5%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을 최근 재정경제부 등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생산 차질이 한국 수출과 투자, 제조업 심리에 미치는 파급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다만 파업 회피만으로 올해 경제를 낙관하기는 어렵다. 세계 경제 자체가 저성장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중동 전쟁 이후 커진 에너지 가격 충격이 국내 물가를 다시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최근 2026년 세계 경제 성장률을 3.0%, 2027년을 3.1%로 제시했고, 국제통화기금(IMF)도 올해 전망치를 3.1%로 낮췄다. 여기에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달 1년 전보다 2.6% 올라 2024년 7월 이후 2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고, 원화 기준 수입물가 상승률도 3월 20.4%, 4월 20.2%로 뛰었다. 수입물가 상승은 원재료와 에너지 비용을 밀어 올리고, 이는 시차를 두고 생활물가 전반에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으면 금리 부담도 다시 커질 수 있다. 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하반기 중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을 다시 거론하고 있고, 장기금리도 이미 높아진 상태다. 서울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5월 18일 장중 연 3.814%까지 올랐고, 20일에도 연 3.760%를 기록했다. 미국 국채 금리 상승과 원/달러 환율 불안도 국내 금융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대출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 가계 이자 부담은 3조2천억원 늘어난다. 문제는 이런 부담이 모든 업종에 똑같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호황이지만 다른 산업과 고용은 상대적으로 부진해 경기 회복의 온도 차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취업자 수 증가 폭은 7만4천명으로 16개월 만에 가장 적었고, 15세 이상 고용률도 63.0%로 0.2%포인트 하락했다.
결국 한국 경제는 당장 반도체 덕분에 버티고 있지만,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들어섰다. KIEP는 인공지능 투자 효과의 국내총생산 기여도가 2026년부터 점차 둔화할 수 있다고 봤고, KDI도 내년 성장률을 올해보다 0.8%포인트 낮은 1.7%로 예상했다. 정부는 로봇, 자동차, 선박 등 7대 피지컬 인공지능 분야와 그래핀, 초전도체, 소형모듈원전(SMR) 등 15개 초혁신경제 프로젝트를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5월 18일 영국 런던 투자설명회에서 초과 세수를 혁신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반도체 의존도를 줄이면서도 성장의 바통을 이어갈 새 산업을 얼마나 빨리 키우느냐에 따라 향후 한국 경제의 체력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