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종합투자계좌와 발행어음을 통해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을 늘리도록 유도하면서, 증권업계가 관련 상품 판매와 투자 조직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종합투자계좌와 발행어음을 기반으로 조달한 자금을 벤처기업과 중소·중견기업 등 이른바 모험자본 시장에 투입하는 비중을 빠르게 높이고 있다. 종합투자계좌는 자기자본 8조원 이상 종합금융투자사업자에게 허용되는 계좌로, 증권사가 원금 지급 의무를 지고 고객 예탁금을 기업금융 관련 자산에 운용하는 상품이다. 발행어음은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발행하는 1년 만기 이하 단기 금융상품으로, 자기자본의 최대 200%까지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
정부는 이런 조달 수단이 단순한 수신 확대에 그치지 않고 실제 기업 성장자금으로 이어지도록 제도를 설계했다. 발행어음·종합투자계좌 조달액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을 국내 모험자본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다. 의무 비율은 2026년 10%, 2027년 20%, 2028년 25%로 단계적으로 높아진다.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종합투자계좌·발행어음을 운용하는 증권사의 모험자본 공급 규모는 총 9조8천700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체 조달금액 57조2천억원의 17.3% 수준으로, 올해 적용 기준인 10%를 웃돌았다. 발행어음 조달금액은 2020년 말 15조6천억원에서 올해 3월 말 54조4천억원으로 약 3.5배 늘었고, 지난해 처음 나온 종합투자계좌도 지난해 말 1조2천억원에서 올해 3월 말 2조8천억원으로 커졌다.
개별 증권사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종합투자계좌 1호부터 4호까지 모두 2조5천600억원을 설정했고, 올해 1분기 말 발행어음 잔액은 21조6천300억원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종합투자계좌 1·2호로 각각 1천억원을 모집했으며, 1분기 말 발행어음 잔고는 10조1천억원이다. 이 회사는 종합투자계좌와 발행어음으로 조달한 약 10조3천억원 가운데 올해 1분기까지 1조7천억원가량을 모험자본에 투자해 투자 비율 16.4%를 기록했다. NH투자증권도 지난 3월 종합투자계좌 업무가 가능한 세 번째 증권사로 지정된 뒤 4천억원 규모 1호 상품을 완판했고, 다음 달 첫째 주에는 약 1천200억원 규모의 2호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현재 발행어음 사업이 가능한 곳은 한국투자, 미래에셋, NH투자, KB, 키움, 하나, 신한투자 등 7곳이다.
증권사들은 자금 조달 확대에 그치지 않고 실제 투자처를 찾기 위한 조직 정비도 병행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지난 14일 신규 설립 예정인 ‘키움 벤처히어로 모펀드(가칭)’에 2천억원을 출자하기로 했고, 올해 신규 모험자본 6천억원 공급 계획을 세웠다. 한국투자증권은 중소·중견기업을 맡는 리서치 인력을 기존 3명에서 6명으로 늘렸다. 하나증권은 올해 2천억원 규모 민간 모펀드를 결성한 데 이어 리서치센터 안에 ‘미래산업팀’을 신설해 소형주 기업 분석을 확대하고 있으며, 제주·부산·충남 등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협업해 비수도권 투자도 강화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도 최근 ‘혁신성장팀’을 꾸려 시가총액 1조원 이하 기업에 대한 보고서 발간을 늘리고 있다. 이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보다 투자할 만한 기업을 발굴하는 능력이 앞으로 더 중요해졌다는 판단이 반영된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벤처·스몰캡 시장은 본래 규모가 크지 않은데, 의무 투자 비율이 빠르게 높아지면 제한된 투자처에 자금이 몰려 일부 영역에서 가격 거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기업공개 시장은 코스닥 상장과 상장폐지 규제 강화, 중복상장 제한 등으로 진입 문턱이 높아진 상태여서, 모험자본 공급 확대와 회수 시장 여건이 서로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적절한 투자 채권을 찾기 어려워 수익성이 낮은 자산을 편입하거나 역마진을 감수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발행어음은 결국 고객에게 상환해야 하는 자금인 만큼 무리한 운용은 곧 유동성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증권사의 자금 공급 기능을 키우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정책 취지에 맞는 투자처 발굴과 위험 관리 체계를 함께 갖추는지가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