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은 29일 국내 경제가 반도체 호황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물가와 가계부채, 주택시장 과열 우려가 함께 커지고 있어 금리 인상 기조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경기의 기초 여건은 나쁘지 않지만 대외 변수와 금융시장 불안 요인이 여전하다는 판단이 함께 담겼다.
한국은행이 이날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를 보면, 최근 주식시장은 인공지능 투자 둔화 우려와 외국인 대규모 순매도 영향으로 큰 폭의 조정을 받았다. 특히 5월 이후에는 외국인 매도세가 집중되고 빚을 내 투자하는 레버리지 투자까지 늘면서 주가 변동성이 한층 커졌다고 봤다. 다만 한국은행은 반도체 기업들의 대규모 영업이익 전망처럼 국내 증시를 떠받치는 기초 체력, 즉 펀더멘털은 여전히 양호하다고 평가했다. 이는 증시가 단기 충격을 받더라도 추세적으로 크게 꺾일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뜻에 가깝다. 앞으로 시장은 인공지능 산업 전망,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 글로벌 자금 흐름 같은 대외 변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통화정책 방향은 물가와 금융안정을 함께 겨냥한 긴축 쪽에 무게가 실렸다. 한국은행은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연 2.5%에서 2.75%로 0.25%포인트 올린 데 이어, 앞으로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경기 호조로 성장 흐름이 개선되는 가운데 물가상승률이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고, 금융 불균형 위험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을 배경으로 들었다. 올해 경제는 반도체 중심 수출 증가와 비교적 견조한 소비에 힘입어 상반기에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앞으로도 수출과 투자가 버팀목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반도체 호황의 혜택이 일부 산업과 계층에 집중돼 경기 확산 효과는 제한될 수 있고, 중동 정세, 인공지능 투자 속도, 미국 관세 정책 같은 변수는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남아 있다.
물가에 대해서는 상방 압력이 더 커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호황에 따른 소득 개선과 투자 확대가 수요 측 물가 압력을 키울 수 있다고 봤다. 여기에 높은 환율이 이어지면서 수입물가가 오르고,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으로 기업들의 가격 인상 유인이 커진 점도 부담으로 지목했다. 하반기 이후에는 국제유가의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공업제품과 개인서비스 가격 오름세가 확대되면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을 웃도는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환율은 7월 들어 원화가 달러화 등 주요 통화에 비해 비교적 강세를 보이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후반으로 내려왔다. 국내 주가 조정에 따른 외국인 주식 순매도 완화 등으로 외환 수급이 다소 나아진 영향이다. 하지만 중동 사태와 미국 연방준비제도 통화정책 경로가 다시 흔들릴 경우 외환시장 변동성은 언제든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택시장과 가계부채는 한국은행이 가장 경계하는 금융안정 변수 가운데 하나로 제시됐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가 다시 확대되는 상황에서 차입을 활용한 투자까지 늘어나 금융 불균형이 더 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금리가 오르면 물가 압력과 과도한 부채 증가를 어느 정도 누를 수 있지만, 반대로 취약 차주와 취약 부문에서는 부실이 늘어날 가능성도 상존한다고 봤다. 특히 수도권 집값이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와 소득·자산 여건 개선이 맞물리면 가계대출 증가 압력도 계속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정부의 부동산 대책, 금융권의 가계대출 관리 강화, 대출금리 상승은 이런 위험을 일부 완화하는 요인으로 꼽았다. 한국은행은 반도체 경기가 인공지능 활용 확대와 관련 인프라 투자에 힘입어 상당 기간 확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면서도, 인공지능 수익성 논란에 따른 금융시장 조정, 대형 정보기술 기업의 투자 축소, 에너지 병목 현상은 하방 위험으로 제시했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한국은행이 성장보다 물가와 금융안정에 좀 더 무게를 두는 정책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