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시드 단계 트렌드는 기술과 환경, 국방 산업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확대되고 있다. 올 상반기 들어 장수기술, 국방 기술, 폐기물 저감, 우주기술 분야에서 새롭게 출범한 스타트업들이 다수 시드 자금을 유치하며 미래 산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투자자는 물론, 정책 결정자들까지 이들 기업의 행보에 주목하는 양상이다.
장수기술은 최근 가장 뜨거운 분야 가운데 하나다. 노화된 세포를 되살리는 유전자 치료, 퇴행성 뇌질환을 겨냥한 초음파 치료부터 조직 재생에 초점을 맞춘 약물 개발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사망 이후를 대비한 전신 동결 보존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까지 등장했다.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이와 관련해 올해만 최소 7개 기업이 시드 자금을 유치했으며, 활발한 기술 검증 과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국방 기술 분야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급속히 자금 유입이 확대되고 있다. 특히 미국 내 스타트업들 중에서는 단순 무기 생산을 넘어, 고속 정밀 제조기술과 AI 기반 전략 솔루션 등 군수 산업 전반의 디지털화를 꾀하는 기업들이 주를 이룬다. 대표적으로 캘리포니아 소재 'Amca'는 안드리센 호로위츠 등 유수의 VC로부터 7650만 달러(약 1101억 원)의 시드 자금을 유치했으며, 그에 못지않은 규모의 투자 유치 사례도 이어지고 있다.
기후 변화 대응이라는 공익적 과제를 안은 폐기물 저감 및 재활용 기술 영역에서도 의미 있는 시드 투자가 이뤄졌다. 플라스틱 순환 이용, 식품 폐기물 감축, 폐수 정화 솔루션 등 분야에서 미국 외 국가, 특히 유럽과 캐나다의 스타트업 활동이 두드러진다. 미국 내에서도 대형 패널 재활용 기술을 보유한 플로리다의 'OnePlanet Solar Recycling'이나 업사이클링 기술을 개발 중인 매사추세츠의 'MacroCycle' 등이 주목받고 있다.
우주기술 부문은 스타트업 생태계 전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성장을 보여주고 있다. 2021년 이후 누적 투자금만 350억 달러(약 50조 4,000억 원)를 넘은 가운데, 올해에도 시드 단계의 투자 활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IPO에 성공한 'Voyager Technologies'처럼 후속 투자 라운드까지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다. 추진 시스템, 위성 적재 솔루션, 우주선 부품에 이르기까지 기술적 다양성이 특히 돋보인다.
이들 네 가지 분야는 하나의 공통점을 공유한다. 창업 단계부터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과거 플랫폼 비즈니스나 SNS 모델처럼 간단한 앱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창업 환경과는 분명차이가 있다. 스타트업 성공의 허들 자체가 높아진 셈이다. 평범한 대학생 창업자가 기숙사에서 시작할 수는 없는 영역인 만큼, 더욱 정밀한 검증을 요구한다는 점도 현재 투자자들 사이에서 분명히 인식되고 있다.
올해 시드 투자 흐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향후 10년 이상을 형성할 산업의 뼈대를 가늠하는 데 주요한 지표라 할 수 있다. 장기적 트렌드에 투자하려는 이들에게는 지금이 바로 중요한 판단의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