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코 리서치(Kaiko Research)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10월 중순 미국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가한 가운데,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사상 최대 수준의 디레버리징과 유동성 위축 현상이 발생했다고 진단했다. 시장은 갑작스러운 가격 폭락과 함께 수십억 달러 규모의 강제 청산에 직면하며, 주요 거래소 전반에 걸쳐 거래 유동성이 사실상 마비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 희토류 수출 제한에 대응해 추가 관세를 언급한 금요일 오후, 글로벌 주식시장이 급락했으며 암호화폐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비트코인(BTC)을 포함한 주요 디지털 자산의 가격은 급격히 하락했고, 바이넌스와 OKX 등 주요 거래소에서는 20억 달러에 달하는 BTC 롱 포지션이 청산됐다. 가장 큰 청산 규모는 바이빗과 OKX에서 각각 7,200만 달러, 3,200만 달러에 달했다.
카이코 리서치는 대규모 청산이 트럼프의 발언 직후인 오후 8시 57분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일어났으며, 이는 숏 포지션보다는 롱 포지션에 집중돼 있던 시장 구조 상 취약성이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결제약정 역시 전반적으로 10% 이상 감소하며, 레버리지가 포지션 과열의 직접적인 원인 중 하나였음을 드러냈다. 이후 주말에 반등이 일부 있었으나, 미결제약정은 회복되지 않고 억제 상태를 유지했다.
흥미롭게도 해당 지정학적 이슈와 동시에 트럼프 관련 암호화폐 프로젝트인 WLFI(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와 연결된 토큰에서 선제적 매도 압력이 확인됐다. 이른 시점부터 매도세가 강해졌으며, 변동성이 폭발하기 시작하기 전부터 과도한 레버리지와 공포 심리가 결합돼 있었다는 점에서 시장 참여자들의 불안 심리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다.
유동성 고갈 역시 사태를 악화시켰다. BTC, 이더리움(ETH), 솔라나(SOL), 리플(XRP) 등 주요 자산의 거래량은 한 시간 사이 급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래소 전반에서는 주문장 깊이가 현저히 얕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바이낸스, 크립토닷컴, 크라켄 등에서는 중간 가격 대비 4% 또는 10% 이상 떨어진 수준에서만 실질적인 매수 주문이 확인되며, 이는 마켓 메이커들이 리스크 회피 성향을 강화하며 시장에서 철수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크라켄에서는 BTC-USD 스프레드가 최대 1,500달러까지 확대됐고, 코인베이스와 크립토닷컴에서도 500~1,000달러 수준까지 벌어지는 비정상적인 호가 차이가 발생했다. 이는 마켓 메이커 부재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의 결과로, 카이코 리서치는 이것이 단순한 충격이 아닌 구조적 리스크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급변 동향 와중에 바이낸스에서 발생한 USDe의 가격 왜곡 현상도 시장 혼란을 키웠다. 에테나(Ethena)가 발행하는 USDe는 1차 시장에서 1달러 페그를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낸스 현물 시장에서는 일시적으로 0.65달러까지 하락했으며, 이로 인해 해당 데이터를 참고한 파생상품 포지션에도 영향을 미치며 추가적인 가격 왜곡과 강제 청산으로 이어졌다. 이는 가격 오라클(Source of truth)이 단일 거래소에 의존한 구조의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향후에는 다중 오라클을 활용한 벤치마크 인덱스 적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카이코는 관련 보고서에서 “이러한 시장 붕괴는 단기적 충격을 넘어, 레버리지 사용 범위와 오라클 설계, 유동성 공급 구조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함을 시사한다”고 결론지었다. 카이코 리서치는 앞으로 후속 리포트를 통해 가격 책정 메커니즘과 구조적 리스크 완화 방안에 대해 보다 심층적인 분석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