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된 지 1년이 넘었다. 블랙록, 피델리티, 반에크가 앞다퉈 비트코인을 사들이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들이 움직이자 언론은 환호했다. "드디어 기관이 인정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2026년 3월 현재, 비트코인 거래소 보유량은 221만 BTC로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응답자의 69%는 시장의 급격한 난기류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거나 매도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장기 보유자(LTH)들의 평균 매입 단가는 약 3만 8,900달러 수준이다. 현재 7만 달러대에서도 평균 74% 수익 상태인 이들은, 팔지 않는다.
즉, 시장에 나와 있는 비트코인은 전체의 20% 남짓이다. 나머지는 잠겨 있다. OG 홀더들의 지갑 속에, 수년째 움직임 없이.
기관들은 이걸 모를 리 없다. 블랙록의 리스크 분석팀이 온체인 데이터를 못 읽을 리 없다. 그들은 알면서 들어왔다. 왜인가.
여기서부터가 진짜 이야기다. 이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게임이론(Game Theory)의 문제다.
플레이어를 소개한다
이 게임의 테이블에는 세 부류의 플레이어가 앉아 있다.
플레이어 1 — OG 홀더(초기 보유자) 2009년부터 2015년 사이 비트코인을 채굴하거나 헐값에 산 사람들이다. 평균 취득 단가는 수백~수천 달러. 지금 가격에서 이들의 수익률은 수백 퍼센트다. 이들의 전략은 단 하나다. 보유(HODL). 팔지 않는 것이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다.
플레이어 2 — 기관 투자자 블랙록, 피델리티, 마이크로스트래티지, 그리고 각국 정부의 전략 비축까지. 이들은 수백억 달러를 들고 시장에 들어왔다. 그런데 정작 살 수 있는 물량이 없다. 시장에 나온 비트코인이 전체의 20%뿐이니.
플레이어 3 — 개인 투자자(개미)가 게임의 마지막 입장자다. 가장 비싼 가격에 사고, 정보는 가장 적으며, 감정에 가장 취약하다. 이 게임에서 이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는, 글 말미에 밝히겠다.

1라운드 — 치킨 게임: OG 홀더 vs 기관
경제학에 치킨 게임(Chicken Game)이 있다. 두 차가 서로를 향해 달린다.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진다. 아무도 꺾지 않으면 둘 다 죽는다.
비트코인 시장의 OG 홀더와 기관 사이에 지금 이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OG 홀더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나는 비트코인을 1,000달러에 샀다. 지금 7만 달러다. 팔아야 하나? 팔면 수익이다. 하지만 내가 대량으로 팔면 가격이 폭락하고, 나의 나머지 물량 가치도 사라진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팔지 않는 한 가격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공급이 묶여 있으니까.
기관 입장에서도 생각해보자. 나는 비트코인을 사야 한다. 고객들이 원하고, ETF를 출시했고, 약속한 물량이 있다. 그런데 살 물량이 없다. OG 홀더들이 팔지 않는다. 내가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그들은 영원히 팔지 않는다.
결과는 예측 가능하다. 기관이 먼저 핸들을 꺾는다. 가격을 올려서 OG 홀더들의 일부 물량을 끌어낸다. OG 홀더는 일부를 팔고, 나머지는 더 높은 가격에 계속 앉아있는다.
이 치킨 게임에서 OG 홀더는 구조적으로 유리하다. 팔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팔아야 하는 사람보다 항상 강하다.
2라운드 — 죄수의 딜레마: OG 홀더들끼리
그런데 OG 홀더들 사이에도 게임이 있다. 이것이 고전적인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다.
OG 홀더 A와 B가 각각 10만 개씩 갖고 있다고 가정하자.
- A와 B 모두 안 팔면 → 가격 계속 상승 → 둘 다 최고 이익
- A만 팔면 → A는 수익 실현, B의 물량 가치 일시 하락
- B만 팔면 → 반대의 경우
- 둘 다 팔면 → 가격 폭락 → 둘 다 손해
합리적 선택은 협력, 즉 둘 다 안 파는 것이다.
실제로 온체인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단기 보유자들이 공포에 손실 매도를 이어가는 동안, 장기 보유자들은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포지션을 확대하고 있다. OG 홀더들은 암묵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서로 만난 적도 없고, 합의한 적도 없지만. 비트코인의 '보유 문화(HODL culture)'는 사실 이 죄수의 딜레마에서 협력 균형을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사회적 메커니즘이다.
3라운드 — 내쉬 균형: 왜 이 게임이 계속되는가
경제학자 존 내쉬는 말했다. 모든 플레이어가 자신의 전략을 바꿀 유인이 없는 상태, 그것이 균형이라고.
지금 비트코인 시장이 정확히 그 상태다.
- OG 홀더는 팔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 안 판다
- 기관은 사는 것이 최선이다 → 계속 산다
- 이 두 행동이 맞물리면 → 가격은 장기적으로 오른다
- 가격이 오르면 → OG 홀더는 더 안 팔 유인이 생기고, 기관은 더 사야 할 이유가 생긴다
이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은 스스로를 강화한다. 깨지려면 외부 충격이 필요하다. 전쟁, 규제, 거시경제 위기 같은 것들. 지금 이란 전쟁과 스태그플레이션이 그 충격의 후보들이다.
4라운드 — 기관의 진짜 전략: 물량이 아니라 인프라를 산다
여기서 기관들의 진짜 속셈이 드러난다. 그들이 사는 건 비트코인이 아닐 수 있다.
블랙록 ETF(IBIT)에 담긴 비트코인은 코인베이스 커스터디가 보관한다. 피델리티는 자체 커스터디를 구축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OG 홀더들은 물량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기관들은 인프라를 장악하고 있다. 수탁(커스터디), 결제 레일, 규제 프레임워크. 보유는 개인이 하지만, 가격 결정과 유통 구조는 점점 기관의 손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것은 계획된 것인가, 자연스러운 결과인가.
답하기 어렵다. 하지만 결과는 명확하다. 비트코인의 탈중앙화 이념과, 중앙화되는 금융 인프라 사이의 모순이 점점 커지고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설계한 시스템 위에, 월스트리트가 새 시스템을 덧씌우고 있다.
5라운드 — 그렇다면 개미는 이 게임에서 무엇인가
솔직하게 말하겠다.
게임이론에서 '마지막 입장자(Last Mover)'는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다. 모든 정보가 이미 가격에 반영된 뒤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개미가 비트코인을 7만 달러에 산다면, 그 돈은 누구에게 가는가. OG 홀더의 일부 수익 실현 물량이거나, 기관이 포지션을 조정하며 내놓은 물량이다. 양쪽 모두 개미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취득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이 게임의 냉혹한 진실이다. 개미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물론 비트코인이 계속 오른다면 개미도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게임이 계속되는 덕분에 얻는 부산물이다.
마지막 질문: 이 게임은 끝날 수 있는가
내쉬 균형은 영원하지 않다. 세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시나리오 A — OG 홀더가 협력을 깬다. 어떤 대형 OG 홀더가 패닉 셀을 시작한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배신을 선택하는 순간이다. 연쇄 매도가 시작되고, 기관들도 팔기 시작한다. 이것이 진짜 구조적 하락의 시작이다. 지금 이란 전쟁, 유가 급등, 스태그플레이션이 이 배신의 유인을 높이고 있다.
시나리오 B — 기관이 인프라를 완전히 장악한다. OG 홀더들의 물량은 있지만 기관이 가격을 완전히 통제하는 구조가 완성된다. 비트코인은 탈중앙화 화폐가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상품이 된다. 이것이 비트코인 최대주의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시나리오 C — 균형이 지속된다. OG 홀더는 계속 안 팔고, 기관은 계속 사고, 가격은 장기 우상향한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시나리오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비트코인이 반복해서 보여준 패턴이기도 하다.
어느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이 게임을 이해하지 못한 채 참여하는 것과, 이해하고 참여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당신은 지금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