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증시에서는 하루 사이 특정 기업의 시가총액이 1,000억 달러(약 144조 원) 이상 급등하거나 급락한 사례가 벌써 119차례나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전체 발생 횟수보다 40% 이상 많은 수치이며,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컸던 2022년에 비해서도 3배를 넘는 수준이다. 대형 기술주가 주축이 된 이 같은 현상은 시장 구조의 변화와 투자 행태의 고도화를 반영하는 대표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인용한 시장 분석에 따르면, 이러한 이례적 수준의 종목별 시가총액 급변은 엔비디아(NVDA), 애플(AAPL), 마이크로소프트(MSFT), 알파벳(GOOGL) 등 '빅테크 4대장'의 영향력이 시장을 장악한 결과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연초 시총 3조3,000억 달러에서 약 5조 달러에 근접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3조1,000억 달러에서 4조 달러로, 애플은 장중 기준 4조 달러를 돌파하며 급격한 몸집 확장을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은 단지 기업 실적 호조 때문만은 아니다. 투자자들이 초단기 수익을 노리고 쏟아붓는 파생상품 거래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종목별로 레버리지 2배 또는 3배의 움직임을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퀀트 트레이딩), 초단기 옵션 거래 등의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분석에서 개인과 헤지펀드가 실적 발표 시점 등에 맞춰 특정 종목에 단기적으로 과도한 베팅을 하는 행위가 시장의 움직임을 왜곡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시즈그룹의 발레리 노엘 투자 책임자는 "과거라면 1,000억 달러 이상의 시총 변동은 경계받을 사건이었지만, 이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일상적인 충격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파생상품의 광범위한 확산과 함께 트레이딩 중심의 시장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개별 종목의 가격이 거칠게 요동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전체의 변동성을 반영하는 지수는 오히려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카고옵션거래소의 VIX지수는 지난 3분기 기준 2018년 이후 가장 낮은 분기평균치를 기록했으며, UBS는 개별 종목 간 상관관계가 극도로 낮게 유지되면서 시장 전반의 리스크 확산 차단막이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개별 주식이 시장 흐름과 단절돼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자, 반대급부로 언제든 '취약성 이벤트'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도 커지고 있다. UBS의 맥스웰 그리나코프 리서치 책임자는 "시장이 하나의 방향으로 균질하게 움직이기 시작할 경우, 단 한 번의 예기치 못한 변수만으로도 연쇄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결국 지금의 빅테크 주도 장세는 눈부신 시가총액 확장과 동시에 그만큼 커진 리스크를 동반하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눈앞의 수익에 치우치기보다 과열 징후와 변동성 확대 속에서 리스크 관리 전략을 다시 점검할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