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억원 금융위원장은 8일 국내 상장사 절반 이상이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값) 1배를 밑도는 현실을 짚으며,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을 더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이날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개정 공청회’ 축사에서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 10년 만에 처음으로 손질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최근 코스피와 주가순자산비율,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 등 시장 지표가 일부 개선됐더라도, 개별 기업 단위의 본질적 가치 개선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6월 4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2천556개사 가운데 PBR 1배 미만 기업은 1천368개사로 53.5%에 달한다.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문제의식은 단순히 주가를 띄우는 데 있지 않다. 이 위원장은 기업가치 제고는 경영 방식, 사람과 자본의 배분, 이해관계자와의 소통 구조까지 포함한 체질 개선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가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기업을 감시하고 대화를 요구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까지는 기업과의 거래 관계, 민감한 현안에 대한 부담 등으로 기관투자자의 주주 활동이 적극적 경영 감시보다는 소극적 의결권 행사에 머무른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이번 개정안은 이런 한계를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우선 수탁자 책임 활동의 고려 요소를 기존 지배구조 중심에서 환경·사회적 요인까지 넓히기로 했다. 기관투자자가 연기금 자금 운용을 맡는 위탁운용사나 의결권자문사를 활용할 때도, 자사의 수탁자 책임 정책에 맞는 기관을 선정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의무를 명시한다. 여러 기관투자자가 함께 기업과 대화에 나서는 공동관여 활동 원칙도 개정안에 담겼다. 기관투자자 한 곳이 단독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안에서 공동 대응의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이행 점검 체계를 새로 마련하는 것도 핵심 변화다.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에는 4대 연기금과 141개 운용사 등 모두 257개 기관투자자가 참여하고 있지만, 실제로 어떤 기준으로 활동했고 어떤 결과를 냈는지는 바깥에서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이 위원장은 앞으로는 체계적인 점검과 결과 공개를 통해 기관투자자의 활동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 이를 시장 신뢰 회복으로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흐름은 앞으로 국내 자본시장에서 기관투자자의 책임 있는 주주권 행사를 넓히고, 기업가치 개선 요구를 보다 상시적이고 구조적인 방식으로 확산시키는 방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