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최근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이를 뒷받침할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인 것으로 드러났다. SK텔레콤에 사상 최대 규모인 1천34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결정 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위원회는 늘어나는 불복 소송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해 ‘제도는 강화됐지만 현실은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3년 구글과 메타가 맞춤형 광고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각각 692억 원, 308억 원의 과징금을 받은 이후, 국내 개인정보 보호 기관의 집행력이 한층 강화된 것은 분명한 변화였다. 여기에 최근 SK텔레콤의 해킹 사태까지 겹치며 위원회는 대기업과 글로벌 빅테크를 상대로 잇따라 강력한 규제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대형 법무법인을 대동한 사업자들의 법적 대응으로 이어지면서, 위원회의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국회 제출 자료에 따르면 개인정보위원회의 2025년도 소송 대응 예산은 4억2천만 원으로, 2021년 7천5백만 원에 비해 크게 증가했지만, 이미 이 예산은 모두 집행 완료된 상태다. 실제로 현재 위원회에 남은 대응 예산은 ‘0원’이며, 소송을 전담할 공무원은 변호사 자격을 지닌 서기관 1명에 불과하다. 공개된 인력 중에는 계약직 전문연구원 두 명과 법무부에서 파견된 공익법무관 1명이 있지만, 이들 역시 1년 단위로 근무해 장기적인 소송 대응 체계를 갖추기엔 무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개인정보위원회를 상대로 제기된 행정소송은 총 17건에 달하며, 소송 당사자에는 메타, 구글, 삼성전자, 카카오, 현대해상화재보험 등 대기업과 글로벌 기업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김앤장, 광장, 태평양 등 국내 유수의 대형 로펌을 대리인으로 세웠다. 특히 구글과 메타는 1심 패소 후 항소해 2심 절차가 진행 중이며, SK텔레콤 역시 과징금 처분에 불복해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추경호 의원은 최근 KT와 롯데카드 등에서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며, 향후에도 개인정보위의 처분은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불복 소송이 줄줄이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점에서, 정부가 개인정보위의 소송 대응 예산 및 인력 확충에 빠르게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흐름은 향후 개인정보 보호 강화 정책의 실효성 여부와도 직결된다. 제재 수위는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반면, 이를 뒷받침할 행정 역량이 뒷걸음친다면 정책의 일관성과 권위는 흔들릴 수 있다. 위원회가 국가 차원의 기술보안과 정보 보호를 관리하는 핵심기관인 만큼, 지속 가능한 제재 집행 체계를 갖추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