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기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전설적이었던 전자제품 매장 프라이스 일렉트로닉스가 2021년 팬데믹 여파로 문을 닫은 지 4년 만에, 그 공백을 메울 새로운 매장이 등장했다. 오하이오에 본사를 둔 전자제품 소매 체인 마이크로 센터(Micro Center)가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 제29호 매장을 오픈하며 다시금 '너드 천국'의 부활을 알렸다.
이번 오픈은 이달 초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국 내 두 번째 닌텐도 스토어 개장과 더불어 실리콘밸리의 오프라인 테크 상업 환경의 회복 신호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다. 2012년 임대 조건 문제로 실리콘밸리 매장을 철수했던 마이크로 센터는 12년 만에 같은 지역으로 돌아오며 의미 있는 복귀전을 치렀다.
이번에 문을 연 매장은 4만 평방피트(약 3,700㎡) 규모로, 프라이스보다 크기는 작지만 훨씬 실용적인 제품들로 구비됐다. 특히 GPU와 같은 필수 IT부품군에서 눈에 띄는 물량을 확보한 것이 인상적이다. 엔비디아(NVDA)의 최신 RTX 50 시리즈 그래픽카드를 포함해 4,000개 이상의 GPU가 개장 첫날부터 진열됐고, 일부 고급 제품은 가격이 4,000달러(약 576만 원)에 달했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실제 서명한 금도금 GPU도 자선 경매 품목으로 공개돼 현장 분위기를 달궜다.
매장 내에서는 단순 판매를 넘어, 콘텐츠 제작자를 위한 전용 장비 공간, USB-C to A 변환기나 3D 프린팅 필라멘트 같은 매니아층을 위한 부품까지 구비됐다. 애플(AAPL), 델(DELL), HP와 같은 주요 브랜드의 인증 수리 서비스도 가능하며, 3천 개 이상의 부품을 통해 당일 수리도 제공된다.
매장 중심에는 ‘지식 바(Knowledge Bar)’라 불리는 기술문의 공간이 운영되며, 고객들이 실시간으로 전문가와 상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소매업 최초로 iFixit 같은 테크 미디어의 팟캐스트 공간도 마련돼,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커뮤니티 중심의 기술 플랫폼으로 진화한 모습이다.
마이크로 센터의 복귀는 단순한 소매 매장 개장이 아닌, 실리콘밸리 기술 커뮤니티에 대한 확신의 표현이다. CTO, 엔지니어, 자기만족형 ‘메이커’들까지 다양한 층이 이 공간을 찾으며 지역 내 오프라인 기술 생태계를 재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다.
마이크로 센터 뉴스의 편집장이자 현장을 함께 안내한 기술 저널리스트 댄 애커먼은 “올바른 장소와 도시를 골라 진출하는 것이 성공 비결”이라며, “이번 매장은 애플 본사에서도 자동차로 단 6분 거리다. 입지와 제품 기획, 모두 잘 조율된 결과”라고 강조했다.
전자제품 전문 소매 생태계가 점점 축소되는 흐름 속에서 마이크로 센터는 프라이스의 빈자리를 메우는 이상으로, 테크 문화의 재확산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실리콘밸리가 여전히 글로벌 기술 혁신지로 살아 있다는 상징적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