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6일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서 발생한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로 정부 전산망이 사실상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국가 핵심 전산 인프라의 안전 관리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주민등록, 우편, 금융 등 핵심 행정 서비스가 동시에 중단되었고, 정부 역시 민간기업 대비 안전 투자와 기술 도입에서 뒤처졌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고는 무정전 전원장치(UPS)로 불리는 백업 전력 장치의 리튬이온 배터리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2022년 판교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와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당시 카카오톡 등 주요 서비스가 장시간 멈춘 바 있다. 이후 카카오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전력·냉각 설비 실시간 감지 시스템과 데이터센터 이중화 등을 강화했지만, 정부 전산망은 이 같은 민간의 교훈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국내 주요 클라우드 기업 및 글로벌 IT 대기업들은 이미 전력 이상 및 발열 문제를 사전에 감지하는 인공지능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는 AI 운영 자동화 기술(AIOps)을 활용해 장애 예방의 속도를 높여왔고, 실제로 2023년 구글의 미국 데이터센터에서는 AI가 전력 이상 징후를 조기 감지해 대규모 장애를 피한 사례도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여전히 수동적인 전산 운영 방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국가정보자원관리원처럼 국가 핵심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AI 기반 조기경보 체계조차 갖추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예산 편성과 조달 절차가 지나치게 경직돼 빠른 기술 도입이 어렵다고 진단하면서, 안전성과 효율성 모두에서 정부 시스템이 민간에 한참 뒤처졌다고 보고 있다.
AI 기술이 모든 사고를 완전히 방지할 수는 없지만, 발화나 이상 증후를 조기 인지해 대응 속도를 앞당기는 데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실제로 AI는 예측이 어려운 리튬이온 배터리의 급발화조차 사전에 대응 가능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으며, 적시에 시스템을 차단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안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이번 국가 전산망 마비 사태를 계기로 정부는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과제로는 민간에서 이미 검증된 AI 기반 안전 기술의 적극적인 수용과 정부 조직 내부의 유연한 예산·조달 체계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안전 인프라로의 전환 없이는 디지털플랫폼정부라는 청사진도, 'AI 강국'이라는 구호도 현실성 없는 선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