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들이 전체 벤처 투자시장에서 점점 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후기 투자 단계에서 AI 관련 기업들이 눈에 띄게 많은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지난 1년간 북미 전역의 벤처 투자에서 AI 스타트업이 차지한 비중은 전체의 절반에 근접하며, 이 중 약 61%는 후기 단계에서 발생했다.
반면 시드 단계는 38%, 시리즈 A~B로 대표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30%에 그쳐, 스타트업 생애주기 초반보다는 이미 덩치를 키운 AI 기업들이 더 많은 투자금을 유치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데이터는 AI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기술 구현에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AI 산업 특성상 초기 투자보다 후속 투자가 훨씬 큰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는 실제적인 한계도 드러낸다.
이번 분석은 기업의 투자 라운드가 명확히 시리즈 단계로 분류된 사례만 포함해, 단순 벤처라운드나 기업라운드 등 불특정 단계의 투자는 제외했다. 즉 오픈AI(OpenAI)가 소프트뱅크(SoftBank)로부터 유치한 400억 달러(약 57조 6,000억 원) 규모 자금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데이터브릭스(Databricks)의 시리즈 J 100억 달러(약 14조 4,000억 원), 지난해 11월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설립한 xAI의 60억 달러(약 8조 6,000억 원), 그리고 올해 3월 엔트로픽(Anthropic)의 35억 달러(약 5조 원) 등 적지 않은 굵직한 자금 조달이 이뤄졌다.
AI 산업 내 자금 유입이 후기 단계에 치우쳐 있다는 현상은 자동운전, 물류, 온라인 뱅킹 등 이전에 성숙했던 분야들과 유사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AI의 경우 그보다 훨씬 자본집약적이기 때문에 단순히 ‘돌파구를 이미 넘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생성형 AI(GenAI)를 둘러싼 플랫폼 중심 스타트업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자금 수요 또한 초기 단계부터 상당히 크다는 차이가 있다.
아직 시드나 초기 단계에서 AI 분야에 대한 투자 열기가 식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에이전틱 AI나 AI 기반 헬스케어처럼 새로운 응용 영역에 대한 벤처캐피털의 관심은 지속되고 있는 추세다. 오히려 시드 단계에서 AI 비중이 적다는 것은 기업들이 비교적 비용 효율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결국 이런 양상은 AI 산업이 전반적으로 성숙하면서도, 여전히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을 겸비한 이중 구조를 띠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단순히 후기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는 현상 그 자체만으로 AI 생태계를 단정 짓기엔 다소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AI 스타트업의 다음 성장 국면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리고 투자 유치 흐름이 어떤 방향으로 균형을 잡아갈지에 대한 관찰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