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은 이미 도입 단계에서 속도와 성능 면에서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진입하고 있다. 오픈AI의 GPT-5는 빠른 추론 속도, 정교한 도구 활용 능력, 보다 안정적인 논리 구성을 갖춘 채 등장했으며, 이는 앤스로픽의 클로드 오퍼스 4.1 등과 함께 다음 세대 AI 기술의 심화 경쟁을 상징한다. 하지만 AGI(범용 인공지능)가 아직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딥마인드의 데미스 하사비스는 현재의 AI 전환기를 “산업혁명보다 10배 크고, 10배 빠른 변화”라고 정의했다. 기술 진보의 방향보다는 이를 수용할 사회적 기반의 부재가 더욱 우려되는 지점이다.
오픈AI의 CEO 샘 알트먼은 GPT-5를 AGI에 다다르기 위한 여정의 ‘중대한 단면’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기술 진보는 단순한 도구 변화가 아닌, 인간의 정체성과 사회적 제도의 근본적 재편으로 이어지는 흐름이다. 문제는 아직 대부분의 제도 구조나 교육 체계, 규제 틀이 이런 속도를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앤스로픽의 CEO 다리오 아모데이는 기술이 향후 10년 내 수세기의 진보를 압축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전제 조건은 철저한 인적·제도적 투자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경고다.
그렇다면 현재 AI가 도달한 속도에서 걸맞은 책임과 역량은 얼마나 갖춰졌을까. 최근 톰슨로이터가 시행한 C레벨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80% 이상이 이미 AI를 활용 중이지만, 생성형 AI에 대한 사내 교육을 제공한 곳은 불과 31%였다. 이는 기술 수용 수준과 인재 재교육 체계 간의 심각한 불균형을 가리키며, 기업 내부 거버넌스 부재가 초래할 잠재 위험을 그대로 드러낸다. 기업 리더들은 단순한 AI 도입보다 모델 버전 관리, 편향성 점검, 인간 개입 장치, 위기 대응 시뮬레이션 등 조직 차원의 통제를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AI는 이미 고등 교육이나 창의 직군에 있어 ‘지적 동반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실질적 업무 혁신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물류 관리자, 예산 분석가, 조달 담당자처럼 자동화로 대체 위험이 큰 직군들은 역량 강화 기회도 없이 도태될 수 있다. 기능 중심 교육의 확산과 안전망 확충이 없는 한, 이는 대규모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AI의 급속한 확산은 공공 서비스, 금융, 의료 등 다양한 핵심 사회 인프라에 이미 스며들고 있으나, 그 과정은 민주적 토론이나 공공 검증 없이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공공 신뢰도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으며, 기술 수용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기술의 순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통합적인 규제 구조와 참여 기반의 설계가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AI의 도입이 인간 능력의 확장이라는 담론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인력 감축과 비용 절감을 위한 자동화 도구로 전락할 위험도 크다. 특히 경기 침체 국면에서 기업들은 생산성보다 생존을 우선하게 되는데, 이때 AI는 해고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증강'이라는 비전이 실현될지, 아니면 선언에 그칠지는 결국 조직 리더들의 선택과 실행력에 달려 있다.
AI 기술에 대한 낙관적 전망도 존재하지만, 동시에 이로 인한 대량 실업, 교육 불균형, 소득 격차 심화에 대한 우려 또한 명확하다. 문제는 이러한 양면성에 대한 사회적 대비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술 발전에 병행되는 제도 설계와 사회적 합의 없이 낙관만 앞세우는 것은 위험한 착각일 수 있다. 하사비스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인류는 이 문제를 잘 극복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 아니라 ‘결단’이다.
AI가 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손실이 5~10년 내 발생할 수 있다면 지금 즉시 이에 대비해야 한다. 기술이 몰고 올 변화는 점진적이지 않으며, 일단 현실화되면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규제 체계의 유연화, 직무 중심의 재교육 인프라, 공정한 이익 배분 구조, 그리고 강력한 복지 제도 등이 미리 마련돼야 한다.
AI의 시대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실이다. 기술의 진보가 사회 전체의 풍요로 이어질지, 소수의 독점 속 권력 집중으로 귀결될지는 우리가 어떤 제도와 윤리를 지금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혁신의 속도에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이 변화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흡수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단순히 ‘출발선’에 머물러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미래와 정면으로 마주설 수 있다.